주말 저녁에 야식까지 챙겨놓고 히어로 영화를 틀었는데, 기대했던 것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서 당황한 경험, 한 번쯤 있지 않으신가요? 저도 치즈 감자튀김을 무릎에 올려놓고 원더우먼 1984를 처음 봤을 때 딱 그런 기분이었습니다. 화끈한 액션을 기대했는데,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른 걸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1984년이라는 배경, 단순한 시대 설정이 아니었다원더우먼 1984를 보기 전에는 "그냥 시대극 분위기 내려고 80년대로 간 거겠지"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직접 보고 나서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았습니다. 1984년은 냉전(Cold War)이 정점에 가까워지던 시기였습니다. 냉전이란 미국과 소련이 직접 교전 없이 이념과 군비 경쟁으로 대립하던 국제적 긴장 상태를 가리킵니다. 영화 ..
솔직히 저는 2편이 1편보다 더 웅장한 해저 전투를 보여줄 거라고 철석같이 믿고 극장에 들어갔습니다. 캐러멜 팝콘 냄새가 진하게 퍼지는 상영관에 자리를 잡으면서도, 머릿속엔 온통 1편의 압도적인 스케일이 그려지고 있었습니다. 결과는 예상과 완전히 달랐고, 그 예상의 빗나감이 오히려 흥미로운 관람 경험이 되었습니다.브로맨스가 중심이 된 DCEU의 마지막 챕터일반적으로 슈퍼히어로 속편은 전편보다 규모를 키우는 방향으로 간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번 작은 그 공식을 정면으로 거스릅니다. 아쿠아맨과 로스트 킹덤은 아서 카레가 메라와 결혼해 아들 아서 주니어를 낳고, 아틀란티스의 왕으로 자리를 잡은 이후 시점에서 시작합니다. 왕좌에 앉은 영웅이라기보다는, 회의 중에 졸고 격식을 무시하는 어설픈 아버지에..
주말 저녁에 뭔가 거창한 걸 보고 싶은데 머리는 쓰기 싫을 때, 딱 맞는 영화가 있습니다. 2018년 개봉한 아쿠아맨이 그랬습니다. 처음 극장에서 봤을 때 "이게 이렇게까지 볼만한 영화였나?" 싶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스토리가 탁월해서가 아니라, 눈이 완전히 압도당하는 경험 때문이었습니다.두 세계 사이에 선 영웅, 배경과 등장인물아쿠아맨은 DC 확장 유니버스(DCEU), 즉 DC 코믹스의 세계관을 영화로 구현한 시리즈의 일환입니다. 여기서 DCEU란 마블의 MCU처럼 여러 히어로 영화가 하나의 세계관으로 연결되는 프랜차이즈 구조를 말합니다. 아쿠아맨은 그 안에서도 바닷속을 주요 무대로 삼는다는 점에서 처음부터 차별화된 포지션을 갖고 있었습니다.주인공 아서 카레 역을 맡은 제이슨 모모아는 190c..
마블 영화라고 하면 으레 빠른 템포와 유쾌한 농담을 기대하고 극장에 들어서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주말 심야 상영을 일부러 골라 앉았는데, 화면이 열리는 순간부터 뭔가 달랐습니다. 익숙한 마블의 문법이 아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마블 영화는 시종일관 에너지가 넘친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이터널스》는 그 공식을 처음부터 거부하는 작품이었습니다.다국적 앙상블과 MCU 세계관 확장《이터널스》의 출연진 구성은 마블 역사에서도 손꼽힐 만큼 다채롭습니다. 세르시 역의 제마 챈, 이카리스 역의 리처드 매든, 테나 역의 앤젤리나 졸리, 에이잭 역의 셀마 헤이엑까지. 그리고 한국 관객이라면 마동석이 길가메시로 등장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이미 좌석을 예약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습니다. 솔직히 저도 ..
브래드 피트가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실제 F1 서킷을 직접 달렸습니다. CG 없이 찍은 그 장면들을 보는 순간, 저도 모르게 이불을 두 손으로 꽉 쥐었습니다.30년 전 사고가 만들어낸 이야기혹시 한때 열광했던 무언가가 어느 날 갑자기 삶에서 멀어져 버린 기억이 있으신가요? F1 더 무비는 바로 그 감각에서 출발합니다.주인공 소니 헤이스는 1990년대 F1의 차세대 스타였습니다. 그러나 1993년 스페인 그랑프리에서 발생한 대형 충돌 사고가 그의 커리어를 단번에 끊어버렸고, 이후 그는 고용 드라이버로 전전하는 삶을 이어갑니다. 여기서 고용 드라이버란 특정 팀과 정식 계약 없이 필요에 따라 단기로 고용되는 드라이버를 말합니다. 팀 내 서열도 없고, 자신만의 레이스를 기대하기 어려운 자리입니다.그런 소니에게..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 아시아계 배우를 단독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는 25번째 작품인 이 영화가 처음입니다. 저는 암막 커튼을 내리고 모니터 불빛만 켠 채 혼자 봤는데, 예상보다 훨씬 많은 걸 얻고 나왔습니다. 단순히 화려한 액션 블록버스터를 기대했다면, 이 글이 도움이 될 겁니다.버스 안의 격투 — 홍콩 무협의 감각을 어떻게 살렸나솔직히 말하면, 저는 초반 버스 시퀀스에서 이미 이 영화가 뭔가 다르다는 걸 느꼈습니다. 좁은 통로에서 몸을 접고 튀어 오르는 격투 장면인데, 타격음이 방 안을 가득 채우는 순간 저도 모르게 등이 굳었습니다.이 장면이 특별한 이유는 와이어 액션(wire action) 때문입니다. 와이어 액션이란 배우 몸에 와이어를 연결해 공중 도약이나 벽 타기 같은 물리적으로 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