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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2편이 1편보다 더 웅장한 해저 전투를 보여줄 거라고 철석같이 믿고 극장에 들어갔습니다. 캐러멜 팝콘 냄새가 진하게 퍼지는 상영관에 자리를 잡으면서도, 머릿속엔 온통 1편의 압도적인 스케일이 그려지고 있었습니다. 결과는 예상과 완전히 달랐고, 그 예상의 빗나감이 오히려 흥미로운 관람 경험이 되었습니다.

브로맨스가 중심이 된 DCEU의 마지막 챕터
일반적으로 슈퍼히어로 속편은 전편보다 규모를 키우는 방향으로 간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번 작은 그 공식을 정면으로 거스릅니다. 아쿠아맨과 로스트 킹덤은 아서 카레가 메라와 결혼해 아들 아서 주니어를 낳고, 아틀란티스의 왕으로 자리를 잡은 이후 시점에서 시작합니다. 왕좌에 앉은 영웅이라기보다는, 회의 중에 졸고 격식을 무시하는 어설픈 아버지에 가까운 모습입니다. 그 어설픔이 오히려 캐릭터를 사랑스럽게 만든다는 점은 제이슨 모모아만이 가진 특기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편의 가장 큰 변화는 캐릭터 다이내믹스(character dynamics), 즉 등장인물들 사이의 관계 구도가 완전히 뒤바뀐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캐릭터 다이내믹스란 스토리 전반에서 인물들이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력과 관계의 흐름을 뜻합니다. 1편에서 물불 안 가리는 빌런이었던 옴이 이번 편에서는 아서의 파트너로 180도 전환되는데, 두 사람의 티격태격하는 케미스트리가 영화 전체 분위기를 지배합니다. 철천지원수 같은 두 사람이 억지로 손을 맞잡는 그 순간부터, 이 영화가 어디를 향하는지 방향이 명확해집니다.
DCEU(DC Extended Universe)는 DC 코믹스 원작을 바탕으로 워너브라더스가 구축한 공유 영화 세계관으로, 아쿠아맨 로스트 킹덤은 그 마지막 공식 챕터에 해당합니다. 이 마지막 자리에 웅장한 서사 대신 유쾌한 브로맨스를 배치한 선택이 과감하면서도 논란의 여지를 남기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탐험 액션의 재미, 그리고 블랙 만타 서사의 완성
제가 직접 보면서 가장 예상 밖이었던 부분은 탐험 액션 시퀀스였습니다. 두 형제가 남태평양의 외딴섬 정글을 헤치고 오리칼쿰 공장을 추적하는 장면은, 슈퍼히어로 장르보다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에 더 가까운 감각으로 전개됩니다. 오리칼쿰의 영향으로 기괴하게 변이 된 동식물들이 가득한 섬을 누비는 장면에서, 저는 나쵸를 입에 배어 물다가 손을 멈출 만큼 화면에 집중했습니다.
블랙 만타의 서사도 이번 편의 핵심 볼거리입니다. 그는 남극 지하 유적에서 블랙 트라이던트를 손에 넣고, 그 안에 봉인된 고대 왕 코닥스의 영혼에 이끌려 점점 광기에 잠식되어 갑니다. 여기서 주목할 개념이 바로 안타고니스트 아크(antagonist arc)입니다. 안타고니스트 아크란 악역 캐릭터가 이야기 전반에 걸쳐 겪는 심리적, 행동적 변화의 궤적을 말합니다. 1편에서 씨앗처럼 심어뒀던 복수의 동기가 2편에서 완전히 꽃을 피우는 구조로, 1편과 연달아 감상하면 야히아 압둘 마틴 2세가 이 캐릭터를 얼마나 공들여 설계했는지 새삼 느껴집니다.
이번 편에서 집중해서 볼 핵심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아서와 옴의 브로맨스 케미스트리: 대사 한 마디 한 마디에서 터지는 유머가 관객석 전체를 웃음으로 채웁니다.
- 블랙 만타의 광기 묘사: 단순한 복수심을 넘어 저주받은 무기에 잠식되는 과정이 소름 돋게 그려집니다.
- 탐험 시퀀스의 비주얼: 오리칼쿰으로 변이 된 생태계의 묘사는 시각적으로 가장 독창적인 장면 중 하나입니다.
- 코닥스의 영혼 이전 위기: 최후 결전에서 옴에게 코닥스가 옮겨 붙는 순간, 1편의 악몽이 반복될 뻔한 긴장감이 인상적입니다.
슈퍼히어로 영화 시장의 관객 피로도는 꾸준히 화제가 되어왔습니다. 실제로 마블 스튜디오와 DC 스튜디오 모두 흥행 성적이 고르지 않은 시기를 겪어왔으며, 이는 업계 전반의 콘텐츠 과잉 공급과도 연결됩니다(출처: 한국영화진흥위원회). 이런 시장 흐름 속에서 로스트 킹덤이 기존 히어로 공식을 벗어난 어드벤처 톤을 택한 것은 피로도를 낮추려는 의도적 선택으로 보입니다.
DCEU 마무리로서의 완성도와 남은 아쉬움
일반적으로 프랜차이즈의 마지막 편은 웅장한 서사적 마무리를 요구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제 경험상 로스트 킹덤은 그 기대를 절반만 충족시킵니다. 유쾌하고 가볍게 즐길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한 강점이지만, 방대한 DCEU 세계관의 대미로서 갈등의 정점에서 터져 나와야 할 서사적 긴장감이 유머의 과잉 속에 다소 싱겁게 증발해 버리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서사 구조에서 사용되는 개념인 클라이맥스 리졸루션(climax resolution)은 이야기의 최고조 갈등이 해소되는 방식을 뜻합니다. 여기서 클라이맥스 리솔루션이란 관객이 긴장의 정점에서 감정적 해방감을 얻게 되는 결말 구조를 말합니다. 로스트 킹덤은 이 지점에서 감동보다 오락을 택했는데, 고대 왕국의 파멸적 위기를 지나치게 단선적으로 해결하면서 여운이 깊게 남지는 않았습니다. 고대 무기가 지닌 잔혹한 광기와 왕좌의 무게를 짊어진 인물들의 내면적 고뇌를 조금만 더 묵직하게 채워 넣었더라면 어땠을까, 극장을 나서는 내내 그 생각이 맴돌았습니다.
영화 산업 전반에서 프랜차이즈 피로도와 속편의 흥행 공식에 대한 연구는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속편이 전편의 흥행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신선한 서사 구조와 캐릭터의 심화가 동시에 필요하다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영화정책연구소). 로스트 킹덤은 신선한 톤 전환에는 성공했지만, 캐릭터의 심화라는 측면에서는 아쉬움을 남겼다는 점에서 이 분석과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나서며 든 감정은 불쾌함이 아니라 가벼운 만족감이었습니다. 아서와 옴의 브로맨스만으로도 러닝타임 내내 지루할 틈이 없었고, 부모가 함께 여생을 보내는 따뜻한 엔딩 장면은 DCEU 전체를 조용하게 마무리 짓는 적절한 마침표로 느껴졌습니다.
깊은 서사와 묵직한 여운을 기대하는 분이라면 살짝 아쉬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 주간의 피로를 깔끔하게 씻어내고 싶다면, 주말 저녁 팝콘 한 통 들고 가볍게 즐기기에 충분히 유쾌한 선택입니다. 1편을 재감 상한 뒤 이어 보면 블랙 만타의 서사를 훨씬 풍부하게 즐길 수 있으니, 이 순서를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