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극 영화라고 하면 느릿한 전개부터 떠올리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2011년 여름, 극장 좌석에 앉자마자 화면 속 활시위 소리 하나가 명치를 먼저 때렸고, 그 순간 그 편견이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한 김한민 감독의 최종병기 활 이야기입니다.신궁과 병자호란, 무엇이 이 영화를 다르게 만드는가사극 액션 영화가 실패하는 가장 흔한 이유는 시대의 결을 흉내만 내고 속은 비어 있는 경우입니다. 최종병기 활은 그 함정을 비켜갔는데, 제가 직접 극장에서 확인한 이유가 있습니다.병자호란(丙子胡亂)은 1636년 청나라가 조선을 침략해 오십만 명에 달하는 백성을 포로로 끌고 간 역사적 사건입니다. 이 수치는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되어 있을 만큼 참혹한 규모였습니다(출처: 국사편찬위원..
액션 영화에서 악역이 무서우면 영화가 살고, 악역이 밋밋하면 영화 전체가 무너집니다. 범죄도시2는 손석구라는 배우 하나로 그 공식을 다시 증명해냈습니다. 장인어른이 먼저 표를 내밀며 "마동석 나온다는데 안 가면 섭섭하지 않겠냐"고 하셔서 셋이서 극장을 찾았는데,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반신반의했던 게 사실입니다.악역의 질감 — 강해상은 왜 장첸과 다른가범죄도시 시리즈를 1편부터 장인어른, 동서와 셋이 봐온 터라 이번에도 자리 배치부터 익숙했습니다. 팔걸이에 콜라를 걸고 캐러멜 팝콘을 한 움큼 집어 드는데, 스크린에 손석구의 눈빛이 잡히는 순간 손이 팝콘 봉지 안에서 그대로 굳어버렸습니다.1편의 악역 장첸이 보여준 건 폭발적인 광기(狂氣)였습니다. 여기서 광기란 감정이 극도로 폭주하는 상태로, 관객이 "언..
극장 팔걸이에 손을 얹는 순간, 스크린 불빛이 반사되어 미지근하게 데워진 그 감촉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2005년 개봉한 「웰컴 투 동막골」은 그해 600만 관객을 동원하며 한국 영화 흥행 1위를 차지했습니다. 저는 그때 여자친구였던 지금의 아내와 나란히 앉아 이 영화를 봤는데, 상영관을 나서며 한참을 말없이 걸었던 그 발걸음이 스무 해가 지난 지금도 손끝에 남아 있습니다.데뷔작이 맞나 싶었던 완급조절박광현 감독의 데뷔 장편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 솔직히 한 번 더 놀랐습니다. 처음에는 "신인 감독이 이 규모를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도 있었는데, 막상 스크린을 마주하고 나니 그런 걱정이 얼마나 쓸데없었는지 바로 확인이 됐습니다.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완급조절(리듬 조율)에 있습니다. 여기서 완..
불을 다 끄고 소파에 파묻혀 혼자 봤는데, 소주잔을 든 손을 허공에 멈춘 채 화면만 바라보고 있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영화 『인천상륙작전』은 5000분의 1이라는 성공 확률로 계획된 실제 상륙작전을 배경으로, 이름도 잘 알려지지 않은 해군 첩보 부대원들의 이야기를 중심에 놓은 작품입니다. 스펙터클과 인물 서사를 동시에 붙잡으려 한 시도가 어디까지 성공했는지, 제가 직접 보며 느낀 것들을 솔직하게 정리해봤습니다.세 배우가 만들어낸 긴장의 삼각 구도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화려한 캐스팅을 단순한 스타 파워로 소비하는 상업영화들을 워낙 많이 봐온 터라, 처음엔 반신반의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세 배우의 결이 전혀 다른 연기를 인물 간 긴장으로 실제로 엮어냅니다.이정재가 맡은 해군 첩보 부대(켈로부대..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범죄 액션물이라고 하면 으레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를 먼저 떠올렸는데, 극장 문을 나서는 발걸음이 이렇게 가벼울 줄은 몰랐습니다. 마동석이라는 배우가 왜 이토록 오랫동안 사랑받는지, 이 영화를 보고 나서야 제 눈으로 직접 확인했습니다.마동석 카리스마 — 대사보다 몸이 먼저 말한다자꾸 무릎담요를 만지작거리던 손이 어느 순간 멈췄습니다. 마석도가 골목 어귀로 슬렁슬렁 들어서는 장면이었습니다. 뒷줄 구석 자리에서 무의식적으로 자세를 고쳐 앉고 있는 제 자신을 뒤늦게 알아챘습니다. 손에 쥐고 있던 스마트폰은 언제부터인가 화면이 꺼진 채 무릎 위에 방치돼 있었습니다.일반적으로 카리스마 있는 배우라고 하면 강렬한 눈빛이나 날카로운 대사를 먼저 떠올립니다. 그런데 마동석은 그 공식을 비..
《변호인》은 2013년 개봉 당시 1,137만 명을 동원한 작품입니다. 처음 극장에서 봤을 때는 솔직히 '잘 만든 정치 영화'로 정리하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와이프와 다시 스크린 앞에 앉았다가, 예전과 전혀 다른 장면에서 손에 힘이 들어가는 걸 느꼈습니다. 같은 영화인데 이렇게 다르게 읽힐 수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배우 분석 — 대사보다 손끝이 말하는 것들송강호가 연기한 송우석은 처음부터 영웅이 아닙니다. 부동산 등기와 세무 신고 대행으로 밥벌이를 하는, 어디서나 마주칠 법한 현실적인 인물입니다. 여기서 '세무 신고 대행'이란 개인이나 법인을 대신해 세금 신고 절차를 처리해 주는 업무로, 당시 변호사가 이 분야까지 손을 뻗는 건 다소 이례적인 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