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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션 영화에서 악역이 무서우면 영화가 살고, 악역이 밋밋하면 영화 전체가 무너집니다. 범죄도시2는 손석구라는 배우 하나로 그 공식을 다시 증명해냈습니다. 장인어른이 먼저 표를 내밀며 "마동석 나온다는데 안 가면 섭섭하지 않겠냐"고 하셔서 셋이서 극장을 찾았는데,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반신반의했던 게 사실입니다.
악역의 질감 — 강해상은 왜 장첸과 다른가
범죄도시 시리즈를 1편부터 장인어른, 동서와 셋이 봐온 터라 이번에도 자리 배치부터 익숙했습니다. 팔걸이에 콜라를 걸고 캐러멜 팝콘을 한 움큼 집어 드는데, 스크린에 손석구의 눈빛이 잡히는 순간 손이 팝콘 봉지 안에서 그대로 굳어버렸습니다.
1편의 악역 장첸이 보여준 건 폭발적인 광기(狂氣)였습니다. 여기서 광기란 감정이 극도로 폭주하는 상태로, 관객이 "언제 터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끼게 만드는 연출 방식입니다. 반면 강해상은 정반대의 방식으로 공포를 만들어냅니다. 표정을 거의 쓰지 않고, 큰 동작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옆자리 장인어른이 슬며시 몸을 움츠리는 게 곁눈으로 느껴졌습니다. 침묵과 무표정, 그게 이 악역의 무기였습니다.
이 캐릭터를 두고 영화 비평 쪽에서는 싸이코패시(psychopathy)적 묘사라는 표현을 씁니다. 사이코 패시란 공감 능력의 결여와 함께 목적 달성을 위해 감정을 철저히 통제하는 심리적 특성을 가리킵니다. 강해상이 피해자에게 접근할 때의 그 친절함이 오히려 더 소름 돋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목적이 이뤄지면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 그 수법은, 제가 직접 화면에서 확인하면서도 "이게 실제로 가능한가" 싶을 만큼 치밀하게 그려집니다.
손석구는 대사보다 침묵으로 더 많은 걸 전달하는 배우라는 인상을 이번에 확실히 받았습니다. 결정적인 장면에서만 표정에 균열이 생기는 그 순간을 포착했을 때, 극장 안 공기가 달라지는 걸 몸으로 느꼈습니다.
- 장첸(1편): 감정 폭주형 광기, "언제 터질지 모르는" 공포
- 강해상(2편): 무감정·무표정형 냉혹함, "왜 이러는지 알 수 없는" 공포
- 두 악역의 결이 달라 시리즈가 반복되는 느낌 없이 긴장감을 유지함
액션 연출 — 좁은 공간이 만드는 밀착감의 정체
극 초반 베트남 현지처럼 느껴지는 장면들이 사실 국내 세트와 CG로 완성됐다는 걸 나중에 알고 꽤 놀랐습니다. 시장통 소음, 골목 사이로 스며드는 햇빛까지 실제 그곳에 다녀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으니까요. 코로나19로 현지 촬영이 무산된 상황에서 이 완성도를 뽑아냈다는 건, 제작진의 역량을 증명하는 대목입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KOBIS).
본격적인 액션 연출에서 눈에 띄는 건 핸드헬드 카메라(handheld camera) 기법의 활용입니다. 핸드헬드 카메라란 카메라를 삼각대 없이 손으로 들고 촬영하는 방식으로, 화면에 흔들림이 생기며 관객이 현장 안에 있는 듯한 몰입감을 줍니다. 좁은 실내 몸싸움 장면에서 카메라가 인물들과 거의 밀착해 움직이는 탓에, 제가 앉아 있는 자리에서도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나초 한 조각을 든 손이 허공에서 그대로 멈춰버린 건 그 장면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가 끝까지 편하게 볼 수 있었던 이유는 액션 때문만이 아닙니다. 팽팽한 긴장 사이사이 형사들끼리 주고받는 능청스러운 대사, 절체절명의 순간에 살짝 비껴가는 유머가 자꾸 공기를 환기시킵니다. 좁은 공간 액션에서 온몸이 긴장했다가, 형사팀의 시답잖은 농담 한 마디에 참았던 웃음이 팝콘 부스러기와 함께 튀어나오는 리듬이 반복됩니다. 마동석이 화면 가득 들어차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셋이 약속이나 한 듯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팝콘 씹는 속도가 빨라지던 게, 지금도 선명합니다.
다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서사 구조 측면에서 마석도가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방식이 지나치게 직선적이라는 점입니다. 형사물 장르 특유의 내러티브 구조(narrative structure), 즉 복선 → 반전 → 해소로 이어지는 플롯의 흐름이 거의 없고, 결국 물리적 제압으로 수렴합니다. 쾌감은 분명하지만, 그 쾌감이 오히려 캐릭터 서사의 깊이를 덜 파고들게 만든 측면도 있다고 봅니다.
시리즈 완성도 — 셋이 앉아서야 비로소 보인 것
그동안 범죄도시 시리즈를 가족 모임에서 꺼내기가 망설여진 건 잔인한 장면들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장인어른, 동서와 나란히 앉아보니 걱정했던 것과는 다른 결의 영화였습니다. 제 경우엔 혼자 볼 때보다 옆사람의 반응이 더해지니까 영화가 두 배로 살아났습니다.
이 시리즈의 완성도를 뒷받침하는 건 앙상블 연기(ensemble acting)의 힘입니다. 앙상블 연기란 주연 한 명이 아닌 조연까지 포함한 전체 출연진이 균형 있게 존재감을 발휘하는 연기 방식으로, 팀 전체의 호흡이 살아 있을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 최귀화의 전일만 반장, 박지환, 허동원, 하준이 만들어내는 형사팀 특유의 투닥거림이 그 예입니다. 누구 하나 겉도는 사람 없이 각자의 자리에서 제 몫을 해내는 느낌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흥행 성과로도 이 완성도는 수치로 확인됩니다. 범죄도시 2는 국내 개봉 후 누적 관객 1,269만 명을 기록하며 시리즈 최고 흥행작이 됐습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KOBIS). 한국 액션 장르 영화가 이 규모의 관객을 모은다는 건, 단순한 오락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강해상이 등장할 때마다 공기 온도가 달라지는 느낌은 혼자 볼 때보다 옆사람과 함께할 때 훨씬 선명하게 전해졌습니다. 엔딩 크레디트가 오르고 나서야 콜라가 반쯤 남은 채 미지근해진 걸 알아챘고, 손끝에는 팝콘 기름기만 남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장인어른이 먼저 한마디 던지셨습니다. 다음 편 나오면 또 같이 오자고. 그 말 한마디에 그동안 망설였던 시간들이 조금 아깝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후속 편에서는 시리즈 특유의 유쾌한 리듬을 유지하면서도, 악역의 내면에 카메라를 조금 더 오래 머물러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강해상이 왜 이토록 무감한 사람이 됐는지, 그 이면을 조금만 더 보여줬다면 영화의 무게가 달라졌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범죄도시2, 1편 안 보고 봐도 되나요?
A. 제 경험상 2편만 봐도 내용을 따라가는 데 큰 무리는 없었습니다. 다만 가리봉동 사건이라는 배경과 마석도 캐릭터의 매력을 더 깊이 즐기려면 1편을 먼저 보시는 쪽이 훨씬 몰입이 됩니다. 순서대로 보시는 걸 권하고 싶습니다.
Q. 잔인한 장면이 많아서 가족이랑 보기 불편하지 않나요?
A. 저도 그게 걱정돼서 오랫동안 가족 모임에서 꺼내지 못했던 영화입니다. 실제로 같이 보니까 폭력 묘사보다 배우들의 존재감과 유머 리듬이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이니 연령 확인은 필요하지만, 성인 가족끼리라면 생각보다 편하게 볼 수 있는 분위기입니다.
Q. 손석구 강해상이 1편 장첸보다 더 무섭다고 하던데 실제로요?
A. 무섭다는 결이 다릅니다. 장첸은 폭발적인 광기로 관객을 압도하는 방식이라면, 강해상은 아무 표정 없이 옆에 서 있는데 그게 더 소름 돋는 유형입니다. 장인어른이 화면 속 강해상이 등장할 때마다 몸을 슬쩍 움츠리시는 걸 제가 직접 옆에서 봤는데, 그 반응이 답이 된 것 같습니다.
Q. 베트남 장면이 실제 현지 촬영인가요?
A. 아닙니다. 코로나19로 현지 촬영이 무산되어 국내 세트에 CG를 입혀 완성했습니다. 저도 나중에 알고 놀랐을 만큼 완성도가 높습니다. 시장통 소음, 골목 사이 햇빛까지 실제 베트남에 다녀온 것 같은 착각을 주는 수준이었습니다.
결론
범죄도시 2는 손석구의 강해상이라는 악역 하나만으로도 극장에 갈 이유가 충분한 영화입니다. 사이코패시적 무감정으로 관객을 얼어붙게 만드는 이 캐릭터는, 시리즈 전편과 비교해도 공포의 결이 완전히 다릅니다. 앙상블 연기로 균형을 잡은 형사팀, 핸드헬드 카메라로 밀착감을 살린 액션, 그 사이를 비집고 나오는 유머까지 한 그릇에 담겼는데 이상하게 체하지 않고 넘어갑니다.
다만 마석도의 추적이 지나치게 직선적이고, 강해상의 내면이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시리즈를 아직 혼자서만 봐오셨다면, 저처럼 가족과 함께 극장을 찾아보시는 걸 권하고 싶습니다. 팝콘이 먼저 떨어지고 콜라가 미지근해질 때까지, 생각보다 훨씬 오래 자리를 지키게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