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 불을 끄고 쿠팡플레이를 켰을 때만 해도 그냥 가볍게 한 편 보자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강바우 역 마동석의 첫 타격음이 스피커를 타고 넘어오는 순간, 소파 등받이를 짚은 손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습니다. 오컬트와 액션을 한 화면에 버무린 이 영화가 기대 이상이었던 이유, 차근차근 짚어보겠습니다.마동석이라는 배경, 그리고 이 영화가 선택한 세계관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마동석 영화라고 하면 으레 넓은 공간에서 펼쳐지는 스케일 큰 난투를 기대하기 마련인데, 《거룩한 밤: 데몬 헌터스》는 오히려 좁고 어두운 골목과 밀폐된 실내를 주무대로 씁니다. 화려한 무술 퍼포먼스 대신 묵직하게 내리 꽂히는 타격 한 방으로 서사를 밀고 가는 방식인데, 그 단순함이 오히려 이 영화만의 질감을 만들어냅니다.영..
2003년 극장에서 캐러멜 팝콘을 손에 쥔 채 앉아 있다가, 박중훈이 근엄한 얼굴로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를 쏟아내는 순간 팝콘 몇 알이 무릎으로 흘러내리는 줄도 몰랐습니다. 이준익 감독의 황산벌은 660년 황산벌 전투라는 무거운 역사 위에 사투리 앙상블이라는 전혀 다른 언어를 입혀, 교과서 속 이름들을 살아 움직이는 사람으로 바꿔놓은 영화입니다.앙상블이 만든 전혀 다른 사극사극 코미디를 두고 "진지한 역사를 가볍게 소비한다"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황산벌을 보고 나서 그 생각이 완전히 뒤집혔습니다. 박중훈이 연기한 계백은 백제 최후의 명장으로, 삼국사기에도 실명이 기록된 실존 인물입니다. 여기서 삼국사기란 고려 시대 김부식이 편찬한 한국 최초의 정사(正史)로, 삼국시대 인물과 사건을 기록한 역사서..
솔직히 저는 를 꽤 오래 미뤄왔습니다. '일제강점기 배경 영화'라는 수식어가 괜히 무겁게 느껴져서였는데, 막상 틀었다가 라면이 다 불어터지도록 소파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두 주연의 케미부터 전국 각지 사투리를 들고 모인 조연들의 얼굴, 그리고 조선어학회 사건이라는 실제 역사가 어떻게 화면 위에 살아 숨쉬는지, 제가 경험한 그대로 풀어보겠습니다.판수와 정환, 엇갈린 두 사람이 만드는 리듬주말 오후, 딱히 볼 게 없어 넷플릭스를 뒤적이다 큰 기대 없이 재생 버튼을 눌렀습니다. 마침 라면을 올려놓고 소파에 늘어져 있던 참이었는데, 극장 매표원 판수가 조선어학회 사무실로 흘러들어 가는 초반부는 면발을 후루룩 넘기며 낄낄댈 정도로 가벼웠습니다.유해진이 연기하는 판수는 생활인(生活人), 그러니까 별다른 신념 없..
아버지가 아들을 죽인 이야기인데, 끝까지 보고 나면 왜 둘 다 불쌍한 걸까요. 저는 평일 밤 11시에 혼자 이불 속에서 〈사도〉를 봤는데, 재생 버튼을 누르기 전까지만 해도 이 무게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영화가 끝난 뒤 한참 동안 이불 밖으로 나오지 못했을 뿐입니다.배우 연기 — 대사보다 침묵이 더 많은 말을 했다〈사도〉를 보기 전, 주변에서는 "송강호가 영조를 너무 딱딱하게 연기한 것 같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봤을 때는 오히려 그 반대였습니다. 송강호는 목소리를 높이는 장면보다 입을 다무는 순간에 훨씬 더 많은 걸 담아냈습니다. 클로즈업으로 잡힌 그 얼굴을 따라가다 보면, 저도 모르게 무릎을 끌어안고 있었습니다...
재난 영화에서 가장 무서운 건 폭발이나 화염이 아니라는 걸, 헤드폰을 끼고 소파에 파묻혀 이 영화를 보다가 처음으로 실감했습니다. 터널 천장이 무너지는 그 저음의 굉음이 관자놀이를 파고드는 순간, 어깨가 저절로 움츠러들었고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간 뒤에도 한참을 헤드폰을 벗지 못했습니다. 하정우·배두나·오달수가 만들어내는 밀도, 그리고 구조인지 방치인지 모를 씁쓸한 사회적 시선까지 담은 영화, 「터널」입니다.헤드폰을 낀 채 숨을 참았던 그 밤 — 하정우의 눈빛재난 영화를 보면서 실제로 손바닥에 땀이 맺힌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이 영화 전까지는 없었습니다. 넷플릭스로 「터널」을 틀었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클로즈드 스페이스(Closed-space) 스릴러, 즉 폐쇄된 단일 공간 안에서 인..
해발 8750미터. 사람이 살아 버틸 수 없다고 이름 붙은 구역에, 시신을 수습하러 올라간 사람들이 있습니다. 영화 〈히말라야〉는 아시아 최초로 히말라야 8000미터급 16좌를 완등한 엄홍길의 실화를 바탕으로 합니다. 처음 이 설정을 접했을 때, 저는 솔직히 "그게 가능한 일인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났을 때, 그 질문은 전혀 다른 형태로 남았습니다.황정민과 정우, 이 두 사람의 연기가 영화를 붙잡는다황정민이 이 영화에서 택한 방식은 제가 예상했던 것과 달랐습니다. 폭발적인 감정 표현 대신, 그는 내내 뭔가를 삼키는 쪽을 선택합니다. 후배들 앞에서 너털웃음을 짓다가도, 혼자 남는 순간이 오면 표정이 순식간에 가라앉는 그 낙차. 헤드폰을 쓰고 화면을 보면서, 저는 그 낙차를 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