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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8750미터. 사람이 살아 버틸 수 없다고 이름 붙은 구역에, 시신을 수습하러 올라간 사람들이 있습니다. 영화 〈히말라야〉는 아시아 최초로 히말라야 8000미터급 16좌를 완등한 엄홍길의 실화를 바탕으로 합니다. 처음 이 설정을 접했을 때, 저는 솔직히 "그게 가능한 일인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났을 때, 그 질문은 전혀 다른 형태로 남았습니다.
황정민과 정우, 이 두 사람의 연기가 영화를 붙잡는다
황정민이 이 영화에서 택한 방식은 제가 예상했던 것과 달랐습니다. 폭발적인 감정 표현 대신, 그는 내내 뭔가를 삼키는 쪽을 선택합니다. 후배들 앞에서 너털웃음을 짓다가도, 혼자 남는 순간이 오면 표정이 순식간에 가라앉는 그 낙차. 헤드폰을 쓰고 화면을 보면서, 저는 그 낙차를 따라가느라 저절로 자세를 고쳐 앉고 있었습니다.
맞은편에 정우가 있습니다. 박무택 역을 맡은 그는 큰 대사 없이도 등을 돌리는 각도, 걸음의 속도만으로 인물의 내면을 설명합니다. 무뚝뚝한 산악인의 얼굴 아래 감춰둔 애정이 언뜻 드러날 때마다, 관객은 뒤에 올 이야기를 미리 두려워하게 됩니다. 투박하지만 속 깊은 사내. 정우가 이 역할에 딱 맞아 들어간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라미란이 연기한 시신수습전문가 조명애도 인상적입니다. 여기서 시신수습전문가란, 고산 환경에서 유해를 수거하고 이송하는 역할을 전문으로 하는 인력을 말합니다. 극한의 환경에서 냉철함을 유지하면서도 감정을 완전히 지우지는 못하는 인물을 라미란은 담담하게 그려냅니다. 그 장면을 지켜보면서, 저는 헤드폰 볼륨을 낮추고 싶다는 생각이 스칠 만큼 숨이 막혔습니다. 배우들의 얼굴 하나하나가 산 아래 남겨진 누군가의 얼굴처럼 느껴지는 건, 이 영화가 조연 각자에게도 짧게나마 서사를 주기 때문입니다.
- 황정민: 너털웃음과 침묵 사이의 낙차로 대장의 무게를 표현
- 정우: 대사 없이 눈빛과 몸짓으로 사제지간의 정을 전달
- 라미란: 전문가의 냉철함과 인간적 감정을 동시에 담은 조명애 역
- 조성하·김인권·김원해: 각자의 사연을 가진 실존 인물 재현
데스존, 사람이 걸어 들어가선 안 되는 곳을 향해
데스존(Death Zone)이란 해발 8000미터 이상의 고도를 말합니다. 이 고도에서는 대기 중 산소 농도가 해수면의 약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지고, 인체가 소모하는 산소량이 공급량을 초과해 생존이 불가능한 상태가 됩니다. 쉽게 말해,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그곳에 오래 머물면 몸이 스스로를 갉아먹기 시작하는 구역입니다.
엄홍길이 이끄는 휴먼원정대가 향한 곳은 바로 그 데스존, 해발 8750미터 지점입니다. 영화는 그 여정을 화려한 액션으로 채우는 대신, 한 걸음 한 걸음의 무게를 오래 붙잡습니다. 거친 숨소리와 하얗게 얼어붙은 눈썹, 손끝이 얼어가는 와중에도 놓지 않는 손. 저는 이 장면들을 보면서 손바닥에 땀이 배어나는 걸 느꼈습니다. 영화가 그 긴장을 음악이나 편집이 아니라, 숨소리만으로 쌓아 올린다는 게 놀라웠습니다.
고산 등반 연구에 따르면 데스존에서 인체는 판단력 저하, 환각, 근력 급감을 경험합니다(출처: National Library of Medicine). 그 사실을 알고 나서 다시 보면, 대원들이 눈밭을 걸어가는 발걸음 하나하나가 달리 보입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와이프의 손을 나도 모르게 잡고 있었는데, 와이프도 아무 말 없이 화면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박무택의 마지막 무전이 흘러나올 때는 목이 뻐근해질 정도로 몸이 굳어 있었고요.
한 가지 아쉬운 점을 말씀드리면, 데스존까지 이어지는 여정의 밀도에 비해 그 결말 부분은 다소 서둘러 감정을 밀어붙이는 인상을 남깁니다. 조성하, 김인권이 연기한 대원들이 이 위험한 길에 합류하기까지의 개인적인 무게가 조금 더 촘촘히 그려졌다면, 휴먼원정대라는 공동체의 결속이 훨씬 입체적으로 다가왔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휴먼원정대가 던지는 질문, 우리라면 그 산을 올랐을까
휴먼원정대(Human Expedition)란 기록이나 명예가 아닌, 동료를 데려오기 위한 단 하나의 목적으로 꾸려진 원정대를 말합니다. 이 개념이 영화에서 단순한 설정이 아닌 이유는, 실제 엄홍길 대장이 2007년 동료 박무택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이 원정을 감행했기 때문입니다(출처: 국립공원공단). 아무런 보상도, 기록도 남지 않는 그 선택이 이 영화의 전부입니다.
영화가 끝나고도 저는 한참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지 못했습니다. 엔딩 크레디트가 다 올라가도록 앉아 있다가, 냉장고 소리가 다시 들려오기 시작하고 나서야 헤드폰을 벗었습니다. 와이프와 저는 자연스레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우리라면 그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했을까. 이미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보상 없는 그 길을 다시 나설 수 있었을까. 서로 눈만 마주쳤고, 누구도 선뜻 그렇다고 답하지 못했습니다.
이 영화가 잘 해낸 일은 슬픔을 절규가 아니라 침묵으로 옮겨놓았다는 점입니다. 얼어붙은 장비, 대답 없는 무전기, 밥을 뜨다 숟가락을 내려놓는 사소한 동작. 신파에 기댈 법한 소재를 오히려 담담하게 붙잡아두는 연출은 보기 드문 선택입니다. 정상을 정복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남겨진 사람을 데리러 가는 이야기. 그 차이 하나로 산이라는 공간이 전혀 다르게 느껴집니다. 그날 밤, 와이프와 저는 평소보다 오래 서로의 손을 잡고 있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영화 〈히말라야〉는 실화인가요?
A. 네, 실화입니다. 아시아 최초로 히말라야 8000미터급 16좌를 완등한 엄홍길 대장이 2007년 에베레스트 하산 중 조난당한 후배 박무택을 수습하기 위해 다시 등반에 나선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합니다. 배우들이 연기한 인물 대부분이 실존했던 사람들이라, 영화를 보는 내내 그 무게가 다르게 느껴집니다.
Q. 데스존이 정확히 어느 높이인가요?
A. 데스존은 해발 8000미터 이상의 고도를 가리킵니다. 이 구간에서는 대기 중 산소 농도가 해수면의 약 3분의 1로 줄어들어 인체가 정상적으로 기능하기 어렵습니다. 영화 속 박무택이 조난당한 지점은 그보다 높은 해발 8750미터로, 사람이 자력으로 생존하기 극히 어려운 고도입니다.
Q.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나요?
A. 네, 현재 넷플릭스에서 스트리밍 중입니다. 저도 넷플릭스로 처음 봤는데, 헤드폰을 쓰고 혼자 또는 가까운 사람과 함께 보는 걸 권하고 싶습니다. 화면이 크지 않아도 이 영화는 소리와 침묵만으로 충분한 공간감을 만들어냅니다.
Q. 신파 영화인가요? 너무 울면 어떡하죠?
A. 절규나 과잉 감정보다는 침묵과 담담함으로 감정을 전달하는 영화입니다. 다만 초반의 웃음 코드에서 후반의 무거운 분위기로 넘어가는 과정이 다소 급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펑펑 우는 영화라기보다, 가슴 한쪽이 계속 먹먹하게 남는 종류의 감정을 남깁니다.
결론
〈히말라야〉는 등반 스펙터클을 기대하고 보면 다소 다른 영화일 수 있습니다. 이 영화가 붙잡고 있는 건 정상이 아니라, 거기 남겨진 한 사람의 이름이니까요. 화려함을 걷어낸 자리에 침묵을 채우는 연출 방식이 때로 헐겁게 느껴지는 순간도 있지만, 그 담담함이 결국 영화를 오래 기억하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제 경험상 이 영화는 혼자보다는 누군가와 함께 보고, 끝난 뒤에 잠깐이라도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게 되는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그 질문에 쉽게 답하지 못했다면, 이 영화를 제대로 본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