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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동석 영화라고 하면 주먹 장면부터 떠오르지 않으셨습니까?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압꾸정은 달랐습니다. 비상구 옆 차가운 팔걸이에 팔을 얹자마자, 스크린 속 대국의 입이 먼저 열렸고 저는 그 순간부터 예상을 완전히 내려놓게 됐습니다. 마동석이 약 8년 전부터 직접 구상하고 제목까지 손수 지은 영화, 압꾸정을 직접 보고 온 솔직한 후기입니다.
마동석과 정경호, 이 두 사람의 케미가 진짜입니까?
데뷔 전부터 이어 온 20년 인연이라는데, 정작 한 작품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입니다. 스크린에서 처음 나란히 서는 건데도 오래된 사이 특유의 느슨한 공기가 흘렀고, 저는 그게 연출된 게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마동석이 연기하는 대국은 압구정 골목을 제 집 안방처럼 누비는 토박이입니다. "뭔 말인지 알지?"라는 말버릇이 영화 내내 따라붙는데, 이 캐릭터 곳곳에서 배우 본인의 취향이 묻어납니다. 번쩍이는 원색 의상을 갈아입으며 등장하는 장면이 끊이지 않고, 그 안에 마동석이 8년 동안 품어 온 구상이 그대로 녹아 있습니다.
반대편에는 정경호의 지우가 서 있습니다. 여기서 지우는 페르소나(Persona)적 설정이 흥미롭습니다. 페르소나란 외부에 드러내는 자아와 실제 자아가 분리된 상태를 뜻하는데, 지우가 딱 그 구조입니다. 손기술만큼은 압구정에서 알아주던 성형외과 의사인데 면허가 멈춰 선 뒤로는 다른 의사의 이름표를 달고 수술대에 서고 있습니다. 제 손으로 수술하면서 이름표는 남의 것을 달고 있는 셈이죠.
정경호는 까칠한 무표정 하나로 마동석의 수다를 받아내면서 영화의 박자를 잡아 줍니다. 극 중 장르를 완충재(buffer) 역할로 설명하는 표현이 있는데, 완충재란 충격을 흡수해 균형을 유지하는 매개체를 말합니다. 정경호가 이 영화에서 하는 역할이 정확히 그것이었습니다.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도 의사 가운을 입었던 배우인데, 같은 가운을 걸치고도 분위기가 전혀 달랐고, 그 간극이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 마동석 — 대국 역. 각본·제작 참여, 영화 제목도 직접 지음
- 정경호 — 지우 역. 면허 정지 상태로 타인의 이름표를 달고 수술하는 의사
- 오나라 — 미정 역. 등장할 때마다 화면의 채도가 한 톤 올라가는 상담 실장
- 최병모 — 태천 역. 자금줄을 쥔 사업 파트너
- 오연서 — 규옥 역. 인맥으로 판을 넓히는 조력자
15층짜리 건물이 병원으로 바뀌는 스토리 흐름, 어디서 숨이 붙고 어디서 풀립니까?
2007년 압구정. 대국의 머릿속에서는 사업 아이디어가 마르지 않는 샘처럼 솟아오릅니다. 미정의 정보망, 태천의 자금, 규옥의 인맥을 한 줄로 엮어 15층짜리 건물 한 채를 통째로 성형외과로 만들겠다는 계획이 세워집니다.
이 전개를 영화는 빠른 박자로 밀어붙입니다. 제가 직접 관람하면서 느낀 건, 전반부의 속도감이 꽤 쾌적했다는 점입니다. 중국 손님을 겨냥해 중국어 가능 직원을 줄줄이 배치하고, 개원 첫날부터 대기실이 꽉 차는 장면은 머리를 비우고 몸을 맡기기에 부담이 없었습니다. 비상구 옆 차가운 팔걸이의 냉기가 거짓말처럼 잊힐 만큼 화면에 몰입됐습니다.
그런데 중반부에서 분위기가 묘하게 달라집니다. 내러티브 아크(Narrative Arc)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이야기가 갈등을 쌓아 올리고 절정에서 터뜨린 뒤 해소로 이어지는 곡선 구조를 말합니다. 압꾸정은 이 아크의 갈등 구간에서 서로를 의심하는 눈빛을 충분히 쌓아 올리지 못한 채 해소로 넘어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웃으며 건배하던 손이 잔을 내려놓는 속도가 느려지고 말끝마다 속뜻을 캐는 눈빛이 따라붙기 시작할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영화가 그 팽팽함을 끝까지 밀고 나가지 않고 대국의 농담 한 마디로 방향을 돌려놓을 거라는 걸 이미 느꼈기 때문입니다.
면허를 잃고 남의 이름표로 수술대에 서는 지우의 처지, 사람의 얼굴을 사업 밑천으로 삼는 뷰티 도시의 꿈이라는 두 소재는 웃음 아래에 꽤 묵직한 질문을 품고 있습니다. 영화 산업에서 이런 소재는 사회적 리얼리즘(Social Realism)으로 분류되는데, 사회적 리얼리즘이란 현실의 모순과 구조를 이야기 안에 녹여 관객에게 문제의식을 전달하는 창작 방식입니다. 압꾸정은 그 문턱 앞에서 번번이 농담으로 돌아섰고, 저는 크레디트가 오를 때까지 닫혀 있던 그 문 쪽으로 자꾸 고개가 돌아갔습니다.
한국영화진흥위원회(KOFIC)의 관객 동향 분석에 따르면, 코미디 장르는 관객의 재관람 의향보다 초기 입소문에 크게 의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출처: 한국영화진흥위원회). 압꾸정이 전반부에서 빠른 속도감으로 입소문을 잡으려는 구조를 택한 것도 이 흐름과 무관하지 않아 보입니다.
그래서 이 영화, 관람을 권할 수 있습니까?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제 경우엔 후반부에서 팔걸이를 쥔 손에 슬며시 힘이 빠지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같은 결의 농담이 두 번 세 번 돌아올 즈음이었습니다. 웃음 포인트의 모양이 비슷하게 반복되는 지점에서 속도가 살짝 늘어졌고, 서로를 의심하다 오해를 푸는 후반의 동선도 장르가 닦아 놓은 길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손에 남는 장면은 분명히 있었습니다. 오나라의 미정이 문을 열고 들어설 때마다 화면의 색이 한 톤 올라가 졸린 눈까지 번쩍 뜨였습니다. 2007년 압구정을 재현한 의상과 색감의 채도 연출은 눈이 심심할 틈을 주지 않았고, 정경호의 무표정이 마동석의 수다를 받아내는 장면들은 두 배우의 합이 얼마나 잘 맞는지 실감하게 했습니다. 오나라는 2022년 영화 장르만 로맨스로 청룡영화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바 있는데(출처: 청룡영화상), 이번에도 조연 한 명이 장면 전체의 채도를 바꿀 수 있음을 보여 주는 드문 사례였습니다.
이 영화가 거둔 가장 큰 성취는 배우의 체취를 캐릭터의 뼈대로 삼았다는 점입니다. 캐릭터 드리븐(Character-driven) 서사라는 표현을 씁니다. 캐릭터 드리븐이란 사건보다 인물의 성격과 관계가 이야기를 끌고 가는 구조를 뜻합니다. 대국이라는 인물이 마동석의 실제 취향과 구상에서 비롯됐기 때문에, 스크린 위의 말버릇 하나에도 진짜 사람 냄새가 납니다. 예측 가능한 안락함은 이 영화의 미덕이면서 동시에 천장이기도 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압꾸정은 마동석 영화 중에서 어떤 포지션입니까?
A. 액션보다 말이 앞서는 코미디에 가까운 영화입니다. 마동석이 약 8년 전부터 구상하고 각본과 제작에도 직접 참여한 작품으로, 기존 범죄 도시 시리즈와는 결이 다릅니다. 주먹보다 입담을 기대하고 가시면 더 잘 맞을 것 같습니다.
Q. 정경호와 마동석이 실제로 친한 사이입니까?
A. 데뷔 전부터 이어 온 20년 인연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한 작품에서 함께 출연한 건 압꾸정이 처음입니다. 스크린에서 처음 만나는 사이인데도 오래된 사이 특유의 느슨한 공기가 흘러서, 제가 직접 보면서도 어색함을 전혀 느끼지 못했습니다.
Q. 오나라는 압꾸정에서 어떤 역할입니까?
A. 병원 상담 실장 미정 역입니다. 붉은 입술에 원색 의상, 큼직한 귀걸이로 2007년 압구정 거리를 살아 숨쉬게 만드는 인물입니다. 등장할 때마다 화면의 채도가 한 톤 올라가는 효과가 있어서, 영화가 끝난 뒤에도 이미지가 가장 선명하게 남았습니다.
Q. 반전이나 긴장감을 기대하고 봐도 괜찮습니까?
A.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쪽보다는 배우들의 케미와 색감에서 즐거움을 찾는 영화에 가깝습니다. 서로를 의심하고 오해를 푸는 후반부가 있기는 하지만, 장르가 닦아 놓은 길을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뒤통수를 치는 전개보다 예측 가능한 안락함을 원하는 날에 더 잘 맞습니다.
결론
압꾸정은 머리를 비우고 112분을 웃으며 보내기에 부담 없는 영화입니다. 마동석의 말버릇과 정경호의 무표정이 만들어 내는 호흡, 오나라가 등장할 때마다 바뀌는 화면의 온도가 이 영화의 핵심입니다. 제 경험상 이런 종류의 영화는 점수 숫자보다 '오늘 내 기분에 맞는가'가 더 중요한 기준입니다.
웃음 아래에 묵직한 질문이 있었는데 영화가 그 문을 끝내 열지 않은 점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그래서 더 욕심이 나기도 합니다. 무거운 하루 끝에 배우들 얼굴 보는 맛으로 가볍게 앉아 있고 싶은 날이라면, 압꾸정은 그 자리에 잘 맞는 선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