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분짜리 SF 영화를 마라탕 국물이 식는 줄도 모르고 끝까지 봤습니다. 라이언 고슬링이 혼자 화면을 끌고 가는 첫 한 시간, 그리고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외계인과 손발을 맞춰 가는 나머지 시간. 집 TV로 봤는데도 우주에 완전히 빠져들었던 밤이었습니다.태양이 어두워지고 있다는 설정, 얼마나 설득력 있을까요영화의 출발점은 단순합니다. 태양이 해마다 조금씩 어두워지고 있고, 그 원인이 아스트로 파지(Astrophage)라는 미생물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아스트로 파지는 항성의 에너지를 흡수해 번식하는 가상의 단세포 생명체입니다. 쉽게 말해 별빛을 먹고사는 기생 생물인 셈입니다. 황당하게 느껴질 수 있는 설정이지만, 영화는 이 생물의 특성을 꽤 꼼꼼하게 쌓아 올립니다.분자생물학(Molecular Biol..
코미디 영화라고 하면 흔히 긴장감 없이 웃기만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이 작품을 보면서 그 편견이 꽤 크게 흔들렸습니다. 평범한 전자제품 수리공이 기내 납치 상황에서 전혀 다른 얼굴을 꺼내 드는 이야기, 오케이 마담입니다. 퇴근 후 별 기대 없이 소파에 누워 재생 버튼을 눌렀다가 어느 순간 몸이 앞으로 기울어져 있는 저를 발견했습니다.박성웅이라는 배우, 다시 봤습니다일반적으로 액션 배우는 처음부터 강인한 인상을 풍겨야 몰입이 된다고들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오케이 마담에서 박성웅이 연기한 오석환은 낡은 라디오를 고치며 어수룩하게 웃는 수리공으로 등장합니다. 그 손이 기내 통로에서 총을 고쳐 쥐는 순간, 화면 안팎의 온도가 동시에 떨어지는 느낌이었습니다.이 캐..
1,341만 명이 극장을 찾은 영화가 10년 가까이 지나도 여전히 유효한 카타르시스를 건넨다면, 그건 단순한 흥행작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는 뜻입니다. 저는 개봉 당시를 흘려보내고 뒤늦게 유플러스 모바일TV 화면으로 이 영화를 처음 봤는데,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 화면으로 보면서도 명동 격투 장면에서 어깨가 먼저 움츠러들었습니다. 황정민과 유아인이 만들어낸 계급 갈등의 충돌이 얼마나 설득력 있게 완성됐는지, 그날 밤 이불 속에서 확인했습니다.황정민 연기, 능청이 무기가 되는 순간흔히 형사 캐릭터라 하면 강하고 과묵한 이미지를 떠올리기 쉽습니다. 그런데 서도철은 그 공식을 정면으로 비틀어놓습니다. 황정민이 구현한 이 인물의 핵심은 '능청스러운 집요함'인데, 여기서 능청스러움이란 단순히 웃긴다는 뜻이 아니라 상..
주말 오후, 리모컨을 쥐고 뭘 볼지 한참 채널을 넘기다 멈춘 적 있으신가요. 저는 그날 치킨 상자를 뜯으면서 오래 묵혀두었던 영화 하나를 꺼냈습니다. 경찰대생 둘이 무면허로 사건을 쫓는다는 설정에 처음엔 '뻔하겠지' 싶었는데, 두 시간이 훌쩍 지나고 나니 상자 안에는 뼈만 남아 있었습니다. 영화 , 뒤늦게 본 게 조금 억울해진 작품입니다.박서준과 강하늘, 온도차가 만든 케미버디무비(buddy movie)라는 장르가 있습니다. 쉽게 말해 성격이나 배경이 판이하게 다른 두 인물이 한 팀이 되어 사건을 해결해 가는 구조인데, 이 공식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캐스팅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은 그 공식을 교과서처럼 따릅니다. 미혼모 어머니를 위해 경찰대에 입학한 박기준(박서준)은 앞뒤 재지 않고 몸부터 던지..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큰 기대 없이 OTT를 켰다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노트북을 덮은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는 걸 알아챘거든요. 2025년 2월 개봉한 한국영화 는 제74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제너레이션 케이플러스 부문에서 수정곰상을 받은 작품입니다. 화려한 사건 없이 잔잔하게 마음을 건드리는 영화를 찾으신다면, 이 글이 도움이 될 겁니다.동거 서사 — 이 영화가 선택한 가장 오래된 장치동거 서사(cohabitation narrative)란, 서로 전혀 다른 두 인물이 한 공간을 공유하면서 관계가 형성되는 이야기 구조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이 같은 지붕 아래 살면서 변해간다"는 구조로, 한국 드라마나 영화에서 숱하게 써온 공식입니다. 일반적으로 이 구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