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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오후, 리모컨을 쥐고 뭘 볼지 한참 채널을 넘기다 멈춘 적 있으신가요. 저는 그날 치킨 상자를 뜯으면서 오래 묵혀두었던 영화 하나를 꺼냈습니다. 경찰대생 둘이 무면허로 사건을 쫓는다는 설정에 처음엔 '뻔하겠지' 싶었는데, 두 시간이 훌쩍 지나고 나니 상자 안에는 뼈만 남아 있었습니다. 영화 <청년경찰>, 뒤늦게 본 게 조금 억울해진 작품입니다.
박서준과 강하늘, 온도차가 만든 케미
버디무비(buddy movie)라는 장르가 있습니다. 쉽게 말해 성격이나 배경이 판이하게 다른 두 인물이 한 팀이 되어 사건을 해결해 가는 구조인데, 이 공식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캐스팅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청년경찰>은 그 공식을 교과서처럼 따릅니다. 미혼모 어머니를 위해 경찰대에 입학한 박기준(박서준)은 앞뒤 재지 않고 몸부터 던지는 타입이고, 강희열(강하늘)은 이론과 잡학에는 빠삭하지만 실전에서는 한 박자씩 늦게 반응하는 캐릭터입니다.
제가 직접 봐보니 두 사람의 합이 이 영화의 사실상 전부였습니다. 박서준이 몸으로 밀어붙이는 장면에서 아내가 픽 웃음을 터뜨렸고, 저는 따라 웃다가 마시던 맥주가 잘못 넘어가 잠깐 캑캑거렸습니다. 상체가 텔레비전 쪽으로 기울어진 건 꽤 나중의 일이었는데, 그게 이 영화가 가진 흡인력의 정체였습니다.
대사보다 표정과 리듬으로 관계가 쌓이는 방식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기준이 앞서 달리면 희열은 잔소리하며 뒤 따라붙고, 그 엇박자가 반복될수록 두 사람 사이의 신뢰가 자연스럽게 누적됩니다. 상업영화 연출 데뷔작이었던 김주환 감독이 화려한 기교 대신 배우 둘의 호흡을 전면에 내세운 선택은, 결과적으로 이 영화의 가장 결정적인 성공 요인이 됐다고 봅니다.
- 박서준(박기준): 몸을 사리지 않는 저돌적 에너지, 실수해도 미워할 수 없는 얼굴
- 강하늘(강희열): 침착한 말투 아래 은근한 허당끼, 이론파지만 실전에선 허둥대는 반전
- 두 사람의 엇박자: 한쪽이 몸으로 밀어붙일 때 다른 쪽이 계산기 두드리는 구조가 반복되며 긴장과 웃음을 동시에 생성
클럽 목격에서 시작된 무면허 수사
이야기의 출발점은 단순합니다. 훈련에 치이던 두 경찰대생이 오랜만에 클럽에 나갔다가, 한 여성이 강제로 끌려가는 장면을 목격합니다. 그런데 이들은 아직 훈련생 신분입니다. 정식 수사권(搜査權), 즉 법적으로 피의자를 조사하고 증거를 수집할 수 있는 권한이 없는 상태입니다. 신고를 해야 할지, 그냥 눈을 감아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다가 결국 두 사람은 스스로 사건을 파헤치기로 결심합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어설픈 잠입과 투박한 미행이 반복되는데, 화려한 기술 대신 넘어지고 허둥대는 몸짓이 오히려 두 사람의 절박함을 실감 나게 전달합니다. 프로파일링(profiling), 즉 범죄자의 행동 패턴을 분석해 용의자를 좁혀가는 기법을 흉내 내보려다 허탕 치는 장면에서는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여기서 프로파일링이란 수사심리학에서 범죄자의 성격·행동 특성을 추론해 수사 방향을 잡는 기법인데, 교과서에서만 배운 둘이 현장에 적용하려는 장면이 묘하게 현실적입니다.
한국 형사사법 절차상 수사권은 경찰관직무집행법에 의해 엄격히 규정되어 있습니다(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학생 신분으로 이 경계를 넘는 두 주인공의 매 선택이 아슬아슬하게 느껴지는 건 그 설정을 영화가 의도적으로 계속 상기시키기 때문입니다. 사건의 배후에는 조직적인 범죄가 얽혀 있고, 상대는 대학생 둘이 감당하기엔 벅찬 규모입니다. 궁지에 몰릴수록 두 사람은 서로에게 더 의지하게 되고, 다친 서로를 부축하며 절뚝절뚝 뛰어가는 장면에서는 손에 들고 있던 치킨 다리를 내려놓는 것도 잊었습니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남은 것들
영화가 잘 해낸 건 분명합니다. 신인 감독이 두 신인 배우의 합만으로 두 시간을 끌고 가는 뚝심, 그 캐스팅 감각은 경력 감독의 것이라 믿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실제로 <청년경찰>은 2017년 개봉 당시 누적 관객 수 565만 명을 기록하며 그해 한국 영화 박스오피스 상위권에 올랐습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케미 하나로 이 숫자를 만들어냈다는 사실이 지금 봐도 꽤 인상적입니다.
다만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내러티브(narrative), 즉 사건의 인과관계와 등장인물의 동기를 촘촘히 엮어가는 서사 구조가 느슨해지는 게 느껴집니다. 조직의 규모나 목적이 구체적으로 그려지지 않은 채 두 주인공의 활약에만 기대다 보니, 위기가 위기처럼 느껴지기보다 정해진 순서를 밟아가는 인상이 강해집니다. 여기서 내러티브란 단순히 사건의 나열이 아니라 등장인물의 감정과 동기가 맞물리며 관객을 끌어들이는 이야기 구조 전체를 뜻합니다.
조연 활용도 아쉽습니다. 박하선, 성동일, 고준까지 좋은 배우들을 배치해 놓고도 사건의 무게를 함께 짊어질 서사는 충분히 내주지 않습니다. 앙상블(ensemble) 구성, 다시 말해 여러 인물이 각자의 서사를 가지며 전체 이야기를 입체적으로 지탱하는 구조를 좀 더 활용했더라면, 단순한 케미 구경을 넘어 오래 곱씹을 여운까지 챙겼을 텐데 그 지점이 못내 아쉽습니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즈음 아내는 다 식은 맥주잔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재미있었던 건 맞는데 뭔가 조금 더 있었으면 하는 표정, 저도 딱 그 마음이었습니다.
결국 <청년경찰>은 두 배우의 합이 영화 한 편을 어디까지 끌고 갈 수 있는지를 증명한 작품입니다. 세련된 연출이나 정교한 서사를 기대하고 앉으면 아쉬운 지점이 보이겠지만, 함께 보는 사람과 웃고 긴장하는 그 시간 자체를 즐기기엔 부족함이 없습니다. 뭘 볼지 몰라 한참 채널을 넘기고 있다면, 치킨이나 한 마리 시켜놓고 부담 없이 재생 버튼을 눌러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