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인》은 2013년 개봉 당시 1,137만 명을 동원한 작품입니다. 처음 극장에서 봤을 때는 솔직히 '잘 만든 정치 영화'로 정리하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와이프와 다시 스크린 앞에 앉았다가, 예전과 전혀 다른 장면에서 손에 힘이 들어가는 걸 느꼈습니다. 같은 영화인데 이렇게 다르게 읽힐 수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배우 분석 — 대사보다 손끝이 말하는 것들송강호가 연기한 송우석은 처음부터 영웅이 아닙니다. 부동산 등기와 세무 신고 대행으로 밥벌이를 하는, 어디서나 마주칠 법한 현실적인 인물입니다. 여기서 '세무 신고 대행'이란 개인이나 법인을 대신해 세금 신고 절차를 처리해 주는 업무로, 당시 변호사가 이 분야까지 손을 뻗는 건 다소 이례적인 일이..
버디무비(buddy movie)는 성격이 정반대인 두 인물이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케미가 전부라고들 합니다. 그런데 정말 그게 다일까요. 자정을 넘겨 식은 치킨을 옆에 두고 검사외전을 틀었다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손도 못 댔습니다. 황정민과 강동원이라는 조합이 단순한 케미 이상의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걸, 제가 직접 확인했습니다.정반대 두 배우의 케미, 기대와 달랐던 것버디무비라고 하면 흔히 두 캐릭터가 티격태격하다 결국 친해지는 공식을 떠올립니다. 저도 그 정도 예상을 하고 재생 버튼을 눌렀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보고 나니 이건 단순한 공식 그 이상이었습니다.황정민이 연기한 변재욱은 법보다 주먹이 먼저 나가는 검사입니다. 취조실에서 피의자를 몰아붙이는 방식이 거칠기로 소문난 인물인데, 스크린에..
냉동실에서 아이스크림 통을 꺼내 소파에 자리 잡던 그 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라미 말렉이 프레디 머큐리를 얼마나 담아낼 수 있을지 반신반의했는데, 숟가락을 든 손이 화면 앞에서 그냥 멈춰버렸습니다. 배우의 연기력과 실제 역사적 무대 재현이 맞물리면서 단순한 음악 영화 이상이 되어버린 작품입니다.라미 말렉, 프레디 머큐리가 되기까지전기 영화(바이오픽, Biopic)라는 장르에 대해 흔히들 "실제 인물과 닮은 외모가 반이다"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바이오픽이란 실존 인물의 생애를 극화한 영화 장르로, 배우가 원본 인물의 외형과 내면을 동시에 재현해야 하는 이중 부담을 안고 갑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라미 말렉은 프레디 머큐리와 외형적으로 완벽히 일치하지 않습니다. 특수 치아 ..
솔직히 저는 그날 밤 영화보다 옆자리 신경이 더 쓰였습니다. 스물세 살, 평일 밤 열한 시가 넘은 시간에 절반쯤 빈 상영관 맨 뒷줄에 앉아 팔걸이 위에서 손을 잡을까 말까 망설이던 참이었거든요. 그런데 스크린이 환해지더니 한강 둔치가 펼쳐지고, 물속에서 시커먼 형체가 솟구치는 순간 그 모든 생각이 날아갔습니다. 봉준호 감독의 〈괴물〉(2006)은 그렇게 제 스물세 살 여름 한복판에 불쑥 들어왔습니다.한강 매점 가족이 만들어낸 결〈괴물〉을 단순한 괴수 장르물로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처음 본 순간부터 이 영화의 진짜 무기는 가족 캐릭터의 조합이라고 느꼈습니다. 매점을 운영하며 한강 둔치에 뿌리를 내린 박 씨 가족은 어딘가 하나씩 부족하고 서툰 사람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아버지 강두(송강호)는 어리숙하고..
결말을 이미 아는 영화에서 손에 땀이 날 수 있을까요. 저는 그게 가능하다는 걸 이 영화를 보고 나서야 확신했습니다. 141분 내내 팔걸이를 쥔 손에 힘이 빠지질 않았고, 장인어른과 동서와 셋이 로비로 나와서도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1979년 12월 12일, 아홉 시간의 기록이 스크린 위에서 이렇게 선명하게 살아 움직일 줄은 몰랐습니다.배우 앙상블이 만드는 밀도황정민과 정우성. 이 두 이름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보고 나니 그건 절반짜리 이야기였습니다. 이 영화의 진짜 힘은 두 주역을 둘러싼 앙상블(ensemble), 즉 각자의 역할을 맡은 조연 배우들 전체가 만들어내는 집단적 밀도에서 나옵니다. 앙상블이란 개별 연기자의 합산이 아니라, 서로의 호흡이 맞물려 하나의 유기적 ..
개봉 첫 주말, 아내와 아이 둘을 데리고 극장에 들어섰을 때만 해도 기대는 단순했습니다. 화려한 거미줄 액션, 익숙한 얼굴들의 재회. 그런데 두 시간 남짓이 지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저는 팔걸이를 얼마나 꽉 쥐고 있었는지를 뒤늦게 알아챘습니다.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는 제가 예상했던 영화가 아니었습니다.4년의 공백, 얼굴 하나로 설명하다히어로 영화에서 캐릭터 아크(Character Arc)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여기서 캐릭터 아크란 한 인물이 이야기를 거치며 내면적으로 성장하거나 변화하는 궤적을 말합니다. 이번 작품에서 톰 홀랜드의 피터 파커는 그 아크를 대사가 아닌 표정과 침묵으로 쌓아 올립니다. 제가 직접 봤는데, 전작들에서 익숙하게 봤던 장난스러운 눈빛은 거의 사라지고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