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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첫 주말, 아내와 아이 둘을 데리고 극장에 들어섰을 때만 해도 기대는 단순했습니다. 화려한 거미줄 액션, 익숙한 얼굴들의 재회. 그런데 두 시간 남짓이 지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저는 팔걸이를 얼마나 꽉 쥐고 있었는지를 뒤늦게 알아챘습니다.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는 제가 예상했던 영화가 아니었습니다.
4년의 공백, 얼굴 하나로 설명하다
히어로 영화에서 캐릭터 아크(Character Arc)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여기서 캐릭터 아크란 한 인물이 이야기를 거치며 내면적으로 성장하거나 변화하는 궤적을 말합니다. 이번 작품에서 톰 홀랜드의 피터 파커는 그 아크를 대사가 아닌 표정과 침묵으로 쌓아 올립니다. 제가 직접 봤는데, 전작들에서 익숙하게 봤던 장난스러운 눈빛은 거의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대신 말을 아끼는 얼굴, 잠깐 멈추는 손동작 하나가 4년이라는 시간의 무게를 대신했습니다.
데스틴 대니얼 크레턴 감독은 시각적 스토리텔링(Visual Storytelling)을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쉽게 말해, 설명하는 대신 보여주는 방식입니다. 거미줄을 쏘는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장면을 카메라는 클로즈업으로 짚어주지 않습니다. 그냥 흘려보냅니다. 그래서 오히려 더 마음에 걸렸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연출 방식은 관객을 수동적인 관람자가 아니라 이야기의 공범으로 만드는 데 탁월합니다.
젠데이아가 연기하는 MJ 역시 짧은 분량이었지만, 채워지지 않은 빈자리를 눈빛 하나로 남겼습니다. 대사가 없는 그 침묵의 순간에 숨을 참았다가 몰아쉬었던 게 기억납니다. 세이디 싱크와 제이콥 배덜런 같은 새 얼굴들도 짧은 등장 안에서 각자의 색을 뚜렷하게 남겼고, 저는 자연스럽게 이 인물들의 다음이 궁금해졌습니다.
- 톰 홀랜드: 침묵과 뒷모습으로 성숙을 증명한 연기
- 젠데이아: 짧은 등장에도 시리즈 전체의 정서를 끌어올리는 존재감
- 세이디 싱크 · 제이콥 배덜런: 신선한 공기를 불어넣는 새 얼굴들
- 존 번설 · 마크 러팔로: 예상치 못한 등장으로 반가움을 안기는 베테랑
아무도 기억 못 하는 얼굴로 도시를 지키다
「노 웨이 홈」의 마지막 선택, 즉 자신을 모든 사람의 기억에서 지워버리는 결말로부터 4년이 흘렀습니다. 피터는 완전히 혼자가 된 채 매일 밤 자신을 잊은 도시 위를 날아다닙니다. 저도 시리즈를 처음부터 챙겨봐 온 입장이라, 이 설정이 스크린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현될지 가장 궁금했습니다. 직접 겪어보니, 그 적막함은 생각보다 훨씬 묵직하게 전해졌습니다. 편의점에서 스쳐 지나치는 낯익은 얼굴들, 예전이라면 인사를 나눴을 이웃들이 이제는 그저 타인일 뿐인 장면들이 쌓이면서 가슴 한편이 계속 무거웠습니다.
그 사이 도시 곳곳에서 이상한 패턴의 범죄가 번지기 시작합니다. 스콜피온과 부메랑 같은 낯익은 빌런들이 그림자 속에서 움직이고, 툼스톤이라는 새로운 이름이 서서히 수면 위로 떠오릅니다. 빌런 앙상블(Villain Ensemble), 즉 여러 악당이 하나의 사건 안에서 유기적으로 얽히는 구성은 마블 시리즈에서 꾸준히 시도되어 온 방식입니다(출처: Marvel Official). 다만 이번 작품에서는 세 빌런의 위협이 충분히 무르익기 전에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는 느낌이 있었고,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각 인물이 조금 더 뚜렷한 공포를 남길 시간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몸의 변화 역시 이 파트에서 본격적으로 드러납니다. 피터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조차 확신하지 못한 채 홀로 답을 찾아 나섭니다. 스크린 속 그의 뒷모습을 따라가면서, 아이들도 평소와 달리 숨을 죽인 채 화면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제 경우엔 그 침묵이 액션보다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혼자가 아닌 순간, 그 손을 마주 잡다
카타르시스(Catharsis)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원래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 비롯된 이 개념은, 극적인 감정의 정화, 즉 이야기 안에서 쌓인 긴장과 슬픔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며 해소되는 경험을 뜻합니다.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바로 그 카타르시스를 노립니다. 프랭크 캐슬(존 번설)과 브루스 배너(마크 러팔로)까지 얽혀들며 사건이 예상보다 훨씬 큰 그림으로 번지고, 피터는 드디어 혼자서는 안 되는 순간과 마주합니다. 결말의 손을 마주 잡는 장면에서, 저도 모르게 손에 땀이 배어 있었습니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고 나서야 그걸 알아챘습니다.
영화 연출 측면에서 이번 작품은 스펙터클(Spectacle), 즉 시각적 장관보다 절박함에 방점을 찍습니다. 완벽한 히어로의 승리가 아니라 한계에 다다른 인간이 마지막 힘을 짜내는 모습에 가깝기 때문에, 전투가 끝난 뒤 찾아오는 정적이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이 점은 MCU(Marvel Cinematic Universe, 마블 스튜디오가 구축한 공유 영화 세계관)의 최근 흐름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마블은 2023년 이후 영웅의 개인적 서사와 감정선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품을 조율하고 있습니다(출처: IMDb, Spider-Man 시리즈 페이지).
아이들과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 대화가 평소와 확연히 달랐습니다. 누가 더 강한지를 따지던 이전과 달리, 이번엔 피터가 왜 그런 선택을 했을지를 두고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 히어로 영화 한 편이 가족 모두에게 생각할 거리를 남긴 셈인데, 저는 그게 이 영화의 가장 큰 성취라고 생각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 전작을 안 봐도 이해되나요?
A. 제가 직접 봤을 때, 전작인 「노 웨이 홈」의 결말을 모르면 피터의 고립감이 왜 이토록 깊은지 체감하기 어렵습니다. 최소한 「노 웨이 홈」은 먼저 보고 가시는 걸 추천합니다. 시리즈 전체를 순서대로 봐온 분이라면 배우들의 미묘한 변화 하나하나가 훨씬 풍부하게 다가올 것입니다.
Q. 아이들과 함께 봐도 괜찮은 영화인가요?
A. 저는 중2, 초등 5학년 두 아이와 일반관에서 함께 봤습니다. 폭력 수위는 MCU 평균 수준이라 크게 걱정할 부분은 없었습니다. 다만 이번 작품은 액션보다 감정의 무게가 앞서는 편이라, 어린아이보다는 초등 고학년 이상에게 더 잘 맞는 영화라는 느낌이었습니다.
Q. 이번 편에서 피터 몸의 변화, 다음 편에서 설명해주나요?
A. 영화 안에서 신체 변화의 원인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습니다. 암시에 그치고 끝나기 때문에, 저도 보고 나서 한동안 머릿속으로 퍼즐을 맞췄습니다. 다음 편에서 본격적으로 파고들 복선으로 남겨둔 것으로 보이며, 이 부분이 속편에 대한 기대를 자연스럽게 높이는 장치로 작동합니다.
Q. 쿠키 영상 있나요?
A. MCU 영화답게 크레딧 후 장면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자리를 바로 뜨지 않고 끝까지 앉아 있는 것을 강력히 추천합니다. 이후 전개와 직결되는 내용이라 놓치면 아쉬울 수 있습니다.
결론
스파이더맨 시리즈라면 화려한 전투신이 중심이어야 한다고 늘 생각해 왔는데, 「브랜드 뉴 데이」는 그 기대를 조용히 비틀어 놓습니다. 짊어짐의 무게를 얼굴과 뒷모습으로 그려내는 방식이 처음엔 낯설었지만,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이들과 나눈 대화의 결이 달라져 있었을 때 이 영화가 무언가를 제대로 해냈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빌런 구도가 다소 산만하고, 피터의 신체 변화 원인이 끝내 명확히 해소되지 않는 부분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나온 시리즈 중 가장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편이었고, 개인적으로는 가장 만족스러운 관람이었습니다. 시리즈를 처음부터 쭉 따라온 분이라면, 이번 편만큼은 극장에서 보는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그 공기의 무게는 화면 밖에서도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