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 기반 영화를 고를 때 가장 망설이게 되는 건, 이미 아는 이야기라 극장까지 갈 이유를 못 찾을 때입니다. 영화 도 그랬습니다. 삼례 나라슈퍼 사건은 뉴스와 다큐로 한 번쯤 접해 본 사건이라 굳이 두 시간을 쓸까 싶었는데, 막상 앉아서 보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배우들의 얼굴이, 그 침묵이, 예상보다 훨씬 오래 남았습니다.출연진, 얼굴만으로 사건을 읽다극장 불이 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머니 속 스마트폰을 뒤집어 놓았습니다. 그러고서야 손이 비었다는 걸 알았는데, 그게 이 영화가 시작한 방식이었습니다.맨 앞에 선 사람은 설경구입니다. 완주경찰서 수사반장 황준철 역을 맡았는데, 대사보다 대사 사이의 침묵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 연기였습니다. 걸음은 느리고 말은 적지만, 한 번 쥔 사건은 끝까지 ..
164분이라는 긴 상영시간 때문에 극장에서 보기 전부터 부담이 있었던 영화입니다. 하지만 이창동 감독의 신작 『가능한 사랑』은 단순히 긴 영화라고만 말하기 어려웠습니다. 8년 만에 돌아온 감독이 전도연·설경구·조여정·조인성을 한 화면에 세워 보여주는 이야기는 사랑과 계급, 욕망에 대한 질문을 꽤 오래 남깁니다.전도연 설경구, 네 번째 만남이 쌓은 것전도연과 설경구가 다시 한 작품에서 만났다는 사실만으로도 관심이 갈 수밖에 없는 조합입니다. 두 배우는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생일』, 『길복순』에 이어 이번 작품에서 네 번째로 호흡을 맞췄습니다. 특히 이번에는 부부인 미옥과 호석으로 등장해 두 배우가 쌓아온 호흡을 다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전도연이 맡은 미옥은 마스크 공장에서 일하는 아내입니다...
2004년 한국 영화 최초로 천만 관객을 돌파한 작품이 바로 실미도입니다. 저는 그 기록보다 극장 문을 나서지 못했던 그 밤이 먼저 떠오릅니다.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가도 아무도 자리를 뜨지 않았던 그 상영관의 공기는, 지금 생각해도 무언가 다른 온도였습니다.역사적 배경 — 서른한 명의 존재를 지운 나라684부대는 1968년 북한의 청와대 기습 사건, 이른바 1·21 사태에 대한 맞대응으로 창설된 비밀 특수부대입니다. 사형수, 무기수, 사회 부적응자로 분류된 서른한 명을 서해의 외딴섬 실미도에 격리시킨 뒤, 김일성 주석궁 침투와 요인 암살이라는 임무를 부여했습니다. 연좌제(連坐制)라는 굴레 속에서 세상에 발붙일 곳 없던 사람들에게 돌아온 유일한 선택지였습니다. 여기서 연좌제란 본인의 가족이나 친족의 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