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분이라는 긴 상영시간 때문에 극장에서 보기 전부터 부담이 있었던 영화입니다. 하지만 이창동 감독의 신작 『가능한 사랑』은 단순히 긴 영화라고만 말하기 어려웠습니다. 8년 만에 돌아온 감독이 전도연·설경구·조여정·조인성을 한 화면에 세워 보여주는 이야기는 사랑과 계급, 욕망에 대한 질문을 꽤 오래 남깁니다.전도연 설경구, 네 번째 만남이 쌓은 것전도연과 설경구가 다시 한 작품에서 만났다는 사실만으로도 관심이 갈 수밖에 없는 조합입니다. 두 배우는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생일』, 『길복순』에 이어 이번 작품에서 네 번째로 호흡을 맞췄습니다. 특히 이번에는 부부인 미옥과 호석으로 등장해 두 배우가 쌓아온 호흡을 다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전도연이 맡은 미옥은 마스크 공장에서 일하는 아내입니다...
주말 저녁, 아이들이 보자고 졸라대는 영화를 뭘 틀어야 할지 막막할 때가 있습니다. 저도 그런 날이었습니다. 치킨 배달 앱을 열자마자 아들 녀석이 화면을 가리키며 환호성을 질렀고, 그렇게 반강제로 시작한 두리틀이 치킨 상자를 중간에 덮어버리게 만들 줄은 몰랐습니다. 아이언맨 수트를 벗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이번엔 동물들과 대화하는 의사로 돌아왔습니다.캐스팅 하나로 영화 반은 먹고 들어간다솔직히 처음엔 기대치가 높지 않았습니다. 가족 영화라는 장르 자체가 어른에게는 좀 심심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그런데 화면이 켜지고 5분도 안 돼서 자세가 바뀌었습니다. 말투부터 걸음걸이까지, 아이언맨 시절과는 완전히 다른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거기 있었습니다.이 영화의 핵심 강점은 보이스 캐스팅(voic..
솔직히 저는 를 꽤 오래 미뤄왔습니다. '일제강점기 배경 영화'라는 수식어가 괜히 무겁게 느껴져서였는데, 막상 틀었다가 라면이 다 불어터지도록 소파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두 주연의 케미부터 전국 각지 사투리를 들고 모인 조연들의 얼굴, 그리고 조선어학회 사건이라는 실제 역사가 어떻게 화면 위에 살아 숨쉬는지, 제가 경험한 그대로 풀어보겠습니다.판수와 정환, 엇갈린 두 사람이 만드는 리듬주말 오후, 딱히 볼 게 없어 넷플릭스를 뒤적이다 큰 기대 없이 재생 버튼을 눌렀습니다. 마침 라면을 올려놓고 소파에 늘어져 있던 참이었는데, 극장 매표원 판수가 조선어학회 사무실로 흘러들어 가는 초반부는 면발을 후루룩 넘기며 낄낄댈 정도로 가벼웠습니다.유해진이 연기하는 판수는 생활인(生活人), 그러니까 별다른 신념 없..
재난 영화에서 가장 무서운 건 폭발이나 화염이 아니라는 걸, 헤드폰을 끼고 소파에 파묻혀 이 영화를 보다가 처음으로 실감했습니다. 터널 천장이 무너지는 그 저음의 굉음이 관자놀이를 파고드는 순간, 어깨가 저절로 움츠러들었고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간 뒤에도 한참을 헤드폰을 벗지 못했습니다. 하정우·배두나·오달수가 만들어내는 밀도, 그리고 구조인지 방치인지 모를 씁쓸한 사회적 시선까지 담은 영화, 「터널」입니다.헤드폰을 낀 채 숨을 참았던 그 밤 — 하정우의 눈빛재난 영화를 보면서 실제로 손바닥에 땀이 맺힌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이 영화 전까지는 없었습니다. 넷플릭스로 「터널」을 틀었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클로즈드 스페이스(Closed-space) 스릴러, 즉 폐쇄된 단일 공간 안에서 인..
솔직히 이건 기대 없이 틀었다가 자세를 고쳐 앉게 된 영화였습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늦은 오후, 창가에 스탠드 하나만 켜두고 웨이브를 열었는데 중반부터는 담요 끝자락을 꽉 쥐고 있는 제 손을 발견했습니다. 배성우의 6년 만의 스크린 복귀작 《끝장수사》, 뻔한 형사물 공식 안에서 얼마나 살아 있는 영화인지 직접 확인해보시겠습니까.배성우, 대사 없이도 다 말하는 배우배우에게 페르소나(persona)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기서 페르소나란 배우가 한 역할을 통해 굳혀온 고유한 이미지, 즉 스크린 안에서 반복적으로 만들어낸 인물의 결을 뜻합니다. 배성우의 경우, '강력반 진돗개'라는 별명을 가진 형사 재혁이 그 페르소나를 고스란히 담아냈습니다. 담배 한 개비를 태우는 손끝의 미세한 떨림, 파출소 창밖을 응시..
노년을 다룬 한국 영화는 신파가 기본값이라는 인식이 있습니다. 저도 솔직히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영화 은 그 공식을 조용히 무너뜨립니다. 나문희, 김영옥, 박근형 세 노배우가 만들어내는 앙상블은 눈물을 강요하는 대신 그냥 거기 있습니다. 그 존재감만으로 충분했습니다.세 배우가 쌓아온 세월 — 연기 경력이 곧 서사다일반적으로 노년 배우가 주연을 맡으면 "대가에 대한 예우" 정도로 소비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에서 나문희와 김영옥은 예우를 받는 자리가 아니라 이 영화를 직접 짊어지는 자리에 섰고, 그게 화면에서 완전히 다르게 느껴집니다.나문희는 1941년생, 김영옥은 1937년생입니다. 두 배우는 스무 살 무렵부터 연기 인생을 함께해 온 사이로, 실제 친분이 수십 년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