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그냥 역사 영화겠지"라고 얕잡아 봤습니다. 병자호란의 결말은 이미 아는데 뭐가 새롭겠냐 싶었거든요. 그런데 넷플릭스로 틀어놓고 이불 속에 웅크리고 있던 몸이 저도 모르게 더 움츠러들기 시작하면서, 제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결말을 알면서도 손에 땀이 날 수 있다는 걸, 이 영화를 통해 처음 실감했습니다.이병헌과 김윤석, 목소리를 낮출수록 커지는 긴장감일반적으로 영화에서 극적인 장면은 고함과 음악이 함께 치솟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그 생각이 완전히 뒤집혔습니다. 이병헌이 연기한 최명길과 김윤석이 연기한 김상헌이 마주 앉아 논쟁을 벌이는 장면들에서, 두 사람은 단 한 번도 언성을 높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대사 한 줄 한 줄..
솔직히 말하면 저는 스포츠 영화를 그렇게 즐겨 보는 편이 아닙니다. 패턴이 너무 뻔해서 중반부만 지나도 결말이 보이거든요. 그런데 주말 아침, 침대에 이불을 바짝 끌어당기고 넷플릭스를 뒤적이다가 큰 기대 없이 재생 버튼을 눌렀고, 어느 순간 스마트폰 카카오톡 알림을 전부 무음으로 돌리고 있었습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리바운드, 그 이야기를 꺼내보려 합니다.해체 위기 농구부, 코치와 선수들의 면면영화의 배경은 부산중앙고 농구부입니다. 한때 전국을 호령하던 농구 명문이었지만, 지금은 해체 직전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여기에 군 복무 대신 모교에서 시간을 보내다 얼떨결에 지휘봉을 잡게 된 인물이 등장하는데, 바로 코치 강양현입니다.안재홍이 연기한 강양현은 한때 잘 나가던 선수였지만 프로 무대에서 빛을 ..
개봉 2주 만에 전 세계 박스오피스 수익 8억 달러를 돌파한 영화가 있습니다. 온 동네 피드가 "아이 엠 스티브" 밈으로 도배되는 걸 보고 도대체 어떤 물건인가 싶어서, 퇴근하자마자 모니터 앞에 주전부리를 늘어놓고 넷플릭스를 켰습니다.블록 세계관, 스크린 위에서 살아있다화면이 시작되자마자 숨이 막혔습니다. 산도, 나무도, 눈앞을 날아다니는 꿀벌까지 전부 직각의 블록으로 쪼개진 오버월드가 펼쳐졌는데, 제 방의 평범한 가구들과 그 대비가 너무 선명해서 저도 모르게 자세를 고쳐 앉았습니다.이 영화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CG(컴퓨터 생성 이미지)의 완성도입니다. CG란 컴퓨터 그래픽 기술로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장면이나 물체를 화면 위에 구현하는 기법을 뜻합니다. 마인크래프트 특유의 복셀(Voxel) 기..
솔직히 말하면 저는 처음에 이 영화를 부산행의 연장선으로 기대했습니다. 밀폐된 열차 안의 그 팽팽한 긴장감이 다시 올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거실 불을 끄고 홈시어터 스피커까지 켜두고 넷플릭스로 틀었더니, 전혀 다른 결의 영화가 나왔습니다. 기대와 달랐던 만큼 당황했고, 그러면서도 끝까지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부산행 이후 4년, 반도는 어떤 세계관을 펼치는가반도는 2020년 7월 개봉한 연상호 감독의 작품으로, 부산행과 동일한 세계관을 공유하는 스탠드얼론 속편입니다. 스탠드얼론(standalone)이란 전작의 직접적인 이야기를 이어받는 것이 아니라, 같은 세계관 안에서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독립적으로 전개하는 방식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부산행을 보지 않았더라도 반도 자체만으로 감상이 가능하고, 반도를 ..
곱슬머리 때문에 고백을 한 번도 못 했다는 설정, 말이 된다고 생각하시나요? 처음 줄거리를 접했을 때 저도 솔직히 "좀 과하지 않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익숙한 거리가 괜히 낯설어 보이는 이상한 감각이 찾아왔습니다. 뭔가 오래된 감정이 다시 건드려진 느낌이었습니다. 그게 이 영화의 진짜 힘이었습니다.1998년 시대재현, 억지가 없어서 더 무서웠습니다시대극 영화에서 시대재현(Period Reconstruction)이란, 특정 시대의 의상·소품·언어·문화를 재구성해 관객이 그 시기에 실제로 존재하는 듯한 몰입감을 주는 연출 기법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저 교복 어디서 났지?" "저 삐삐 진짜 맞잖아" 하는 반응이 자연스럽게 나오면 성공한 시대재현입니다.이 영..
퇴근하고 나서 머리를 비우고 싶은 날, 아무 생각 없이 킬링타임용 영화 한 편 찾다가 결국 다시 틀게 되는 작품이 있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처음엔 기분 전환용으로 봤던 영화 파일럿을 넷플릭스에서 다시 꺼내 들었는데, 두 번째 감상이 첫 번째와 이렇게 다를 줄은 몰랐습니다.조정석 여장 연기, 기대보다 얼마나 자연스러웠나코미디 영화에서 여장(크로스드레싱)이라는 소재는 사실 식상하다는 편견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여장 코미디는 어색함을 웃음 포인트로 삼는 경우가 많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이 영화는 그 공식을 꽤 다르게 가져갑니다. 조정석은 어색함보다는 완성도로 승부를 걸었습니다.여기서 크로스드레싱(Cross-dressing)이란 생물학적 성별과 다른 성별의 복장과 외모를 취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