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열여섯 명이 한 밥상에 둘러앉는 장면으로 끝나는 영화입니다. 저는 그 마지막 프레임에서 손에 쥔 캔맥주가 언제 미지근해졌는지도 몰랐습니다. 거창한 반전도, 화려한 연출도 없는데 왜 이렇게 오래 남는지, 아직도 그 이유를 되짚고 있습니다.부자관계: 침묵이 대사보다 무거운 이유노포(老鋪) 만두집 사장이 하나뿐인 아들의 삭발 소식을 듣는 장면부터 영화는 시작됩니다. 여기서 노포란 오랜 세월 한자리를 지켜온 가게를 뜻하는데, 이 단어 하나에 무옥이라는 인물의 삶 전체가 압축되어 있습니다. 대를 이어 만두집을 물려주겠다는 평생의 설계가 아들 한 명의 출가 결심으로 흔들리는 구조입니다.김윤석과 이승기가 만들어내는 부자 사이의 긴장감은 대사보다 침묵과 표정으로 채워집니다. 저는 솔직히 이승기..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그냥 역사 영화겠지"라고 얕잡아 봤습니다. 병자호란의 결말은 이미 아는데 뭐가 새롭겠냐 싶었거든요. 그런데 넷플릭스로 틀어놓고 이불 속에 웅크리고 있던 몸이 저도 모르게 더 움츠러들기 시작하면서, 제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결말을 알면서도 손에 땀이 날 수 있다는 걸, 이 영화를 통해 처음 실감했습니다.이병헌과 김윤석, 목소리를 낮출수록 커지는 긴장감일반적으로 영화에서 극적인 장면은 고함과 음악이 함께 치솟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그 생각이 완전히 뒤집혔습니다. 이병헌이 연기한 최명길과 김윤석이 연기한 김상헌이 마주 앉아 논쟁을 벌이는 장면들에서, 두 사람은 단 한 번도 언성을 높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대사 한 줄 한 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