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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매 버튼을 누른 건 제목이 아니라 경수진이라는 이름 때문이었습니다. 웹드라마와 드라마를 거쳐 상업영화 첫 주연 자리에 선 배우를 스크린에서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극장 불이 꺼지고 영화가 시작되자 기대했던 경수진의 새로운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다만 영화를 다 보고 나니 기대 이상인 부분과 예상보다 짧게 느껴진 부분이 함께 남았습니다.
경수진을 따라 들어간 백수아파트, 그 첫인상은?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층간소음을 소재로 한 영화라고 하면 으르렁거리는 이웃 싸움을 먼저 떠올리기 마련인데, 이 영화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걸어갑니다. 경수진이 맡은 거울은 동생 집에서 나와 싼 방 한 칸을 구한 백수입니다. 놀고 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바쁜 사람입니다. 불의를 보면 소매부터 걷어붙이고, 남의 일에 코를 들이미느라 하루가 모자란 인물이죠.
이 영화에서 소리는 또 하나의 주인공입니다. 새벽 4시만 되면 어딘가에서 울리는 둔탁한 쇳소리. 극장 스피커를 통해 반복되는 그 소리는 백수아파트 주민들이 왜 잠을 이루지 못하는지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만듭니다. 소리의 정체가 궁금해질수록 영화의 추리 과정에도 관심이 쏠립니다.
제작에는 배우 마동석이 대표로 있는 빅펀치픽쳐스가 참여했습니다. 마동석 대표가 경수진에게 직접 주연 출연을 제안했다는 인터뷰도 있습니다. 앞서 다른 작품에서 함께 작업하면서 경수진의 연기와 가능성을 눈여겨봤고, 이번 작품의 주연으로 제안했다고 합니다. 극장을 나서면서 그 선택이 이해됐습니다. 팔을 휘저으며 복도를 걷는 뒷모습 하나로 인물의 성격을 보여주는 경수진의 연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캐스팅도 눈에 걸립니다. 고규필이 아파트 주민 경석을, 이지훈이 거울의 동생 두온을, 김주령이 이웃 지원을 맡았습니다. 위키미키 출신 최유정은 공시생 샛별 역으로 이 작품에서 스크린 데뷔를 했습니다. 경비원 정희태, 무학 역의 박정학, ASMR 유튜버 동오 역의 배재영까지 개성 있는 조연들이 아파트 분위기를 채웁니다.
- 경수진(거울): 오지랖 넓은 백수, 아파트 소음의 진상을 파헤치는 주인공
- 고규필(경석): 협박에 눌려 새벽마다 파이프를 두드리는 주민
- 이지훈(두온), 김주령(지원): 거울과 엮이며 한 편이 되어가는 이웃과 가족
- 최유정(샛별), 정희태, 박정학, 배재영: 아파트 생태계를 채우는 개성 강한 조연들
소음의 정체가 밝혀진 순간, 왜 가슴이 먼저 반응했을까?
거울이 이웃 한 명씩을 취조하듯 훑어 나가는 초반 전개는 일종의 추리극(whodunit) 구조를 따릅니다.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 나가는 과정 자체가 이야기의 중심에 놓이는 방식입니다. 용의 선상에서 이름 하나를 지울 때마다 그 사람이 거울의 편으로 넘어오는 구성이 깔끔했습니다. 복도에서 귀를 기울이는 장면도 소음의 정체를 궁금하게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이야기의 결이 바뀌는 순간이 있습니다. 경비원의 말에 걸려든 거울이 엉뚱한 이웃을 범인으로 지목하고, 그 사람이 복도에서 나가는 장면입니다. 객석의 웃음기가 사라지고, 큰소리치던 거울의 태도도 달라집니다. 자신 있게 밀어붙이던 추리가 빗나가면서 영화의 분위기도 잠시 가라앉습니다.
마침내 소음의 정체가 드러납니다. 이웃 모두를 잠 못 들게 하던 새벽의 쇳소리는 안경석이 협박에 눌려 매일 두드리던 파이프 소리였습니다. 비명을 소음으로 포장한 셈입니다. 이 반전을 알고 나서 영화 초반의 둔탁한 박자를 다시 떠올리면 같은 소리가 전혀 다르게 느껴집니다. 단순히 시끄러운 소리가 아니라 누군가의 사정을 담고 있었던 것이죠.
이루다 감독은 2020년 영화진흥위원회 한국영화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장려상을 받은 작품을 바탕으로 이 영화를 연출했습니다. <변신>의 조감독을 거친 뒤 선보인 첫 장편 연출작이기도 합니다. 첫 장편인 만큼 장르 전환의 호흡이 고르지 않은 부분도 있지만, 층간소음과 재건축 문제를 연결해 이웃의 연대라는 이야기로 풀어낸 시선만큼은 분명했습니다. 관련 내용은 이루다 감독 인터뷰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슬리퍼 차림의 앙상블이 쏘아 올린 것, 그리고 아쉬운 마지막 십 분
이야기는 소음 너머로 번집니다. 아파트 안에 숨겨진 비리 문서를 손에 넣으려는 쪽과 지키려는 쪽이 맞부딪히고, 용역 업체 사람들이 들이닥치는 밤이 옵니다. 이 구간에서 영화는 코미디에서 액션으로 기어를 바꿉니다. 슬리퍼 차림의 주민들이 복도 문을 막아서고, 거울을 '대장'이라 부르며 따라다니던 조카들까지 한몫을 합니다. 앞서 서로를 의심하던 주민들이 한데 모이는 장면이라 더욱 반갑습니다.
여기서 앙상블(ensemble)이란 여러 배우가 서로 호흡을 맞춰 하나의 분위기와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집단 연기를 뜻합니다. 이 영화에서 앙상블이 가장 빛나는 지점은 바로 마지막 액션 구간입니다. 서로 의심하던 얼굴들이 한 줄로 어깨를 맞대는 순간, 앞에서 거울이 이웃들의 이름을 하나씩 확인해 온 과정이 이 장면으로 이어집니다.
그런데 막이 너무 빨리 내렸습니다. 경찰서에 들어서는 장면이 나오는가 싶더니 거의 곧바로 화면이 꺼졌습니다. 방금까지 이어진 소동을 정리할 틈도 없이 크레디트가 올라왔습니다. 저도 모르게 "어, 끝이야?" 하고 중얼거렸습니다. 웃음이 났는데 개운한 웃음은 아니었습니다.
97분이라는 러닝타임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방식이 아쉬웠습니다. 주민들이 힘을 합치는 장면까지는 좋았는데, 그 뒤에 감정을 정리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거울이 조카들과 웃음을 나누는 장면 하나, 혹은 이웃들이 다시 복도에 모이는 짧은 여운만 있었어도 좋았을 것입니다. 한 박자 일찍 와 버린 엔딩이 영화 전체에서 가장 크게 걸렸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백수아파트 어디서 볼 수 있나요?
A. 제가 확인한 시점에는 왓챠에서 스트리밍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현재 제공 여부는 플랫폼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니 이용 중인 OTT에서 영화 제목을 검색해 확인하시는 게 좋습니다.
Q. 백수아파트는 공포 영화인가요, 코미디 영화인가요?
A. 공포물은 아닙니다. 추리극으로 시작해 코미디를 거쳐 액션으로 끝나는 장르 복합 영화입니다. 장르의 널뛰기가 거슬린다는 분들도 있지만, 저는 이 혼합이 오히려 영화를 힘차게 만든다고 느꼈습니다. 다만 배꼽 빠지는 코미디를 기대하고 가신다면 기대치 조정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Q. 경수진 배우가 이 영화에서 어떤 역할을 맡았나요?
A. 동네를 누비며 불의를 보면 소매부터 걷어붙이는 백수 '거울' 역입니다. 상업영화 첫 주연 자리로, 오지랖이 넓지만 얄밉지 않은 인물을 자연스럽게 표현했습니다. 팔을 휘저으며 복도를 걷는 모습만으로도 거울의 성격이 잘 드러납니다.
Q. 층간소음 문제를 실제로 다루는 영화인가요?
A. 소재는 층간소음이지만 접근 방식이 다릅니다. 이웃끼리 으르렁거리는 싸움 대신, 소음의 원인을 함께 파헤치며 현관문을 서로 열어 보는 이야기로 방향을 틉니다. 층간소음을 이웃을 만나는 계기로 돌려놓은 시선이 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부분이었습니다.
결론
정리하면, 사람은 좋은데 마무리가 급한 영화입니다. 경수진이 상업영화 첫 주연에서 보여준 에너지가 이 작품의 가장 눈부신 성취이고, 이웃들이 하나둘 같은 편으로 서는 앙상블은 영화가 휘청일 때마다 중심을 잡아 줬습니다. 층간소음이라는 흔한 소재를 이웃을 만나는 이야기로 돌려세운 발상도 오래 기억될 만합니다.
웃음의 온도가 고르지 않고 엔딩이 한 박자 일찍 닫혀 버리는 아쉬움은 분명 있습니다. 빈틈없이 매끈한 추리극이나 배꼽 빠지는 코미디를 기대하신다면 한 걸음 물러서서 보시는 게 좋습니다. 반면 경수진 배우를 좋아하거나 이웃들이 한데 모여 북적거리는 영화를 좋아하신다면, 97분이 충분히 값어치를 합니다. OTT에서 제공 여부를 확인한 뒤 집에서 편하게 틀어 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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