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 8750미터. 사람이 살아 버틸 수 없다고 이름 붙은 구역에, 시신을 수습하러 올라간 사람들이 있습니다. 영화 〈히말라야〉는 아시아 최초로 히말라야 8000미터급 16좌를 완등한 엄홍길의 실화를 바탕으로 합니다. 처음 이 설정을 접했을 때, 저는 솔직히 "그게 가능한 일인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났을 때, 그 질문은 전혀 다른 형태로 남았습니다.황정민과 정우, 이 두 사람의 연기가 영화를 붙잡는다황정민이 이 영화에서 택한 방식은 제가 예상했던 것과 달랐습니다. 폭발적인 감정 표현 대신, 그는 내내 뭔가를 삼키는 쪽을 선택합니다. 후배들 앞에서 너털웃음을 짓다가도, 혼자 남는 순간이 오면 표정이 순식간에 가라앉는 그 낙차. 헤드폰을 쓰고 화면을 보면서, 저는 그 낙차를 따라..
자정 가까이 치킨을 시켜놓고 뭔가 볼 영화를 찾다가 고른 게 〈소주전쟁〉이었습니다. 제목만 보고 가볍게 넘길 뻔했는데, 화면에 '1997'이라는 숫자가 뜨는 순간 닭다리를 뜯던 손이 멈췄습니다. 그 시절 IMF 외환위기를 온몸으로 통과한 직장인의 이야기, 그리고 자본과 사람 사이에서 흔들리는 두 남자의 거리감. 보고 나서도 한동안 소파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1997년 IMF, 화면 속 그 시절이 낯설지 않은 이유영화의 배경은 1997년 IMF 외환위기(International Monetary Fund Crisis)입니다. 여기서 IMF 외환위기란 국가 전체가 외채를 갚지 못할 위기에 처해 국제통화기금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사태를 가리키며, 수많은 기업이 한꺼번에 무너지고 대규모 실직 사태가 이어진 시기였..
사랑하는 사람이 완벽한 모습으로 화면 안에 살아 있다면, 현실로 돌아온 그 사람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영화 는 그 질문을 정면으로 들이밉니다. 밤 열한 시가 넘어 헤드폰을 눌러쓰고 혼자 틀었다가,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가도 한동안 화면을 끄지 못했습니다.배우들이 만들어낸 두 개의 온도김태용 감독은 이후 오랜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왔는데, 캐스팅 자체가 이미 이야기의 반입니다. 탕웨이가 맡은 바이리는 두 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고고학자입니다. 김태용 감독과 실제 부부 사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이 배역이 단순한 캐스팅 이상으로 읽힙니다. 한국어 대사를 소화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텐데, 화면에서는 그 부담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감정이 대사보다 먼저 전해졌습니다.수지는 승무원 정인을 ..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이 영화를 틀기 전까지 밀림 배경 코미디라는 말만 듣고 꽤 기대를 했습니다. 류승룡에 진선규, 거기다 실제 브라질 배우들까지 붙었다는 조합이 머릿속으로 그린 그림은 제법 그럴듯했거든요. 퇴근길에 치킨 한 마리 포장해 와서 소파에 퍼질러 앉아 재생 버튼을 눌렀는데, 영화가 끝나고 나서 제가 느낀 감정은 기대와 딱 절반쯤 어긋난 것이었습니다. 어디서 어긋났는지, 그리고 그래도 볼 만한 이유가 있는지를 제 경험 기준으로 풀어보겠습니다.류승룡·진선규 캐스팅이 이 영화의 가장 확실한 답이다영화를 고를 때 캐스팅이 일종의 품질보증(Quality Assurance)처럼 작동할 때가 있습니다. 여기서 품질보증이란, 배우의 필모그래피와 연기 신뢰도가 작품 선택의 근거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제가..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이 영화를 볼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냥 넷플릭스 홈 화면을 멍하니 넘기다가 임윤아 얼굴이 보여서 손가락이 멈췄습니다. 그게 전부였는데, 맥주캔이 비워지고 감자튀김 봉지 바닥에 부스러기만 남을 때까지 화면에서 눈을 못 뗐습니다. 코미디와 호러를 오가는 장르 혼합, 그 균형을 이 작품이 어떻게 잡았는지 직접 본 느낌으로 풀어보겠습니다.임윤아, 안보현, 성동일 — 이 조합이 왜 되는지 궁금하지 않으셨나요?캐스팅 라인업을 처음 봤을 때, 솔직히 반신반의했습니다. 아이돌 출신 배우와 신세대 남자 주인공, 거기에 성동일까지. 세대와 색깔이 너무 달라서 과연 한 화면에서 어울릴까 싶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틀렸습니다.임윤아가 연기하는 선지는 낮과 밤의 얼굴이 완전히 다른 캐릭터입니다. 영화 용..
늦은 밤 별 기대 없이 넷플릭스를 틀었다가 엔딩 크레디트가 다 올라갈 때까지 소파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영화 넘버원, 엄마 밥상 위에 카운트다운 숫자가 겹쳐 보이는 설정 하나로 가족의 의미를 이렇게 묵직하게 건드릴 줄은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 반전 결말이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스포와 함께 제가 느낀 것들을 풀어보겠습니다.엄마 밥을 못 먹는 아들, 설정의 배경과 줄거리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처음 든 생각은 "이건 판타지 장르의 문법을 빌린 가족 드라마구나"였습니다. 판타지 장르에서 자주 쓰이는 내러티브 장치(narrative device), 즉 초자연적 능력이나 현상을 통해 현실의 감정을 증폭시키는 서사 도구가 이 영화에서는 '숫자'로 구현됩니다. 여기서 내러티브 장치란 이야기 안에서 관객의 감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