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영화가 불편하다고 느낀 적 있으신가요?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2015년 여름에 본 최동훈 감독의 「암살」은 조금 달랐습니다. 1933년 경성과 상하이를 오가며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인데, 139분의 상영시간이 길게 느껴지지 않을 만큼 인물과 사건이 빠르게 이어집니다. 천만 관객을 넘긴 기록보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몇몇 장면과 인물이 오래 남았다는 점이 저에게는 더 인상적이었습니다.눈이 먼저 말하는 배우들, 화면이 설명 대신 보여 주는 것배우의 얼굴이 대사보다 먼저 움직인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요? 전지현이 안옥윤으로 등장하는 첫 저격 장면에서 저는 그 답을 봤습니다. 조준경 너머로 숨을 고르는 눈빛이 거의 흔들리지 않는데, 화려했던 이전 이미지보다 오래 참아 온 사람의 단단함이 먼저 보..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그냥 흘려보낼 생각이었습니다. 하정우와 주지훈이 다시 붙었다는 것 외에 기대치를 높이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헤드폰을 끼고 첫 총성을 들은 순간, 귓바퀴 뒤쪽이 먼저 저릿했습니다. 1986년 레바논 내전을 배경으로 한 실화 기반 구출 작전, 「비공식작전」 후기입니다.버디 케미, 설명 없이 호흡으로 설득하다버디 무비(Buddy Movie)란 성격이 전혀 다른 두 인물이 한 공간에 묶이면서 티격태격하다 결국 신뢰를 쌓아가는 장르 문법입니다. 쉽게 말해 "서로 안 맞는 두 사람이 한 팀이 되는 이야기"인데, 이 영화는 그 공식을 택시 한 대에 밀어 넣었습니다.하정우가 연기하는 민준은 미국 발령이라는 당근 하나에 이끌려 베이루트로 자원한 외교관입니다. 거창한 사명감 같은 건 없고, 계산기를..
영화를 보다가 마음이 불편해진 적 있으신가요. 저는 평일 밤 와이프가 먼저 잠든 걸 확인하고 서재 스탠드만 켠 채 노트북을 무릎에 올렸는데, 재생 버튼을 누른 지 채 5분도 안 돼서 자세를 고쳐 앉았습니다. 2017년 개봉한 영화 이 그랬습니다. 이 영화가 왜 지금도 회자되는지, 제가 직접 보면서 느낀 것들을 솔직하게 정리해봤습니다.영웅 없이 역사를 만든 사람들 — 배우 앙상블이 만든 공기영화를 보면서 처음부터 걸렸던 건 대사가 아니라 얼굴이었습니다. 김윤석이 박처장으로 등장하는 첫 장면, 웃는 얼굴인데도 등골이 서늘해지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방 안의 공기가 달라지는 게 느껴질 정도였으니까요.이 영화의 가장 큰 강점은 앙상블 캐스팅입니다. 앙상블 캐스팅이란 특정 주인공 한 명에게 서사를 몰아주는 대신, ..
재난 영화에서 가장 무서운 건 폭발이나 화염이 아니라는 걸, 헤드폰을 끼고 소파에 파묻혀 이 영화를 보다가 처음으로 실감했습니다. 터널 천장이 무너지는 그 저음의 굉음이 관자놀이를 파고드는 순간, 어깨가 저절로 움츠러들었고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간 뒤에도 한참을 헤드폰을 벗지 못했습니다. 하정우·배두나·오달수가 만들어내는 밀도, 그리고 구조인지 방치인지 모를 씁쓸한 사회적 시선까지 담은 영화, 「터널」입니다.헤드폰을 낀 채 숨을 참았던 그 밤 — 하정우의 눈빛재난 영화를 보면서 실제로 손바닥에 땀이 맺힌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이 영화 전까지는 없었습니다. 넷플릭스로 「터널」을 틀었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클로즈드 스페이스(Closed-space) 스릴러, 즉 폐쇄된 단일 공간 안에서 인..
성공 확률 3.48%. 영화 이 내세운 이 숫자를 처음 봤을 때, 솔직히 장치로 읽혔습니다. 그런데 막상 화면 앞에 앉으니 그 숫자가 몸으로 먼저 왔습니다. 개봉 한참 지난 뒤 조용한 밤 OTT를 켰을 때, 이불을 끌어안은 두 팔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던 그 감각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배우 케미 — 장갑차 안에서 만들어진 것재난 영화는 보통 스케일로 승부한다고들 합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에서 눈을 붙들어둔 건 무너지는 도심이 아니라, 좁은 장갑차 안에서 하정우와 이병헌이 주고받는 호흡이었습니다. 스피커를 타고 방바닥까지 전해지던 저음보다, 두 배우가 대사를 치고받는 리듬에 몸이 먼저 반응했습니다.이 장면들의 뒷이야기를 알게 되면 더 신기해집니다. 두 사람은 같은 공간에서 동시에 찍은 게 아..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그냥 뻔한 스포츠 감동물이겠거니 했습니다. 2009년 개봉 당시 840만 관객을 끌어모은 흥행작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지만, 비인기 종목을 다룬 영화가 얼마나 깊이 들어올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지요. 그런데 눅눅한 주말 저녁, 불을 죄다 끄고 OTT로 다시 틀었다가 생각보다 훨씬 오래 마음에 걸리는 영화라는 걸 깨달았습니다.줄거리: 급조된 팀이 올림픽 무대에 서기까지1990년대 중반, 정부가 동계올림픽 유치를 준비하면서 스키점프 국가대표팀을 꾸려야 하는 상황이 됩니다. 문제는 그 종목에 선수가 단 한 명도 없었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개념이 바로 유니버설리티 플레이스(Universality Places)입니다. 유니버설리티 플레이스란 올림픽 출전 기준 기록을 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