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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극장가에서 라미란과 이레가 정면으로 맞붙는다. 저는 큰 기대 없이 아내와 팝콘을 들고 들어갔다가, 두 배우의 신경전에 팝콘 집던 손을 두 번이나 멈췄습니다. 조용한 마녀와 능청스러운 라이벌이 한 화면 안에서 부딪히는 이 영화, 직접 겪어보니 예상보다 훨씬 단단했습니다.
캐스팅: 두 배우가 화면을 나눠 갖는 방식
이 영화의 가장 큰 성취는 캐스팅입니다. 라미란이 연기하는 전천당의 주인 홍자는, 손님에게 과자 하나를 건네고 그 결과를 담담하게 지켜보는 인물입니다. 말을 아끼는 캐릭터인데도 화면을 압도하는 존재감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제가 직접 극장에서 봤을 때, 라미란이 처음 등장해 눈빛 하나로 분위기를 잡아채는 장면에서 팝콘 집던 손이 저도 모르게 멈췄습니다. 코미디 연기로만 기억하던 얼굴이 이렇게 다른 결을 꺼낼 수 있다는 게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
반대편에는 화앙당의 주인 요미, 이레가 있습니다. 사사건건 전천당의 앞길을 가로막는 역할인데, 밉다기보다는 보는 내내 피식 웃음이 나오는 쪽에 가깝습니다. 이레의 연기를 두고 카리스마(Charisma)라는 표현을 쓰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이번 캐릭터에선 카리스마보다 능청미에 가깝다고 느꼈습니다. 여기서 능청미란 상대방의 긴장을 슬쩍 풀어놓으면서도 실제로는 주도권을 쥐고 있는 태도를 말합니다. 이레는 그 균형을 아주 잘 잡았습니다.
두 사람이 마주치는 장면에서는 대사보다 표정 하나로 신경전이 오갑니다. 박봉섭 감독 특유의 리듬감 있는 연출이 두 사람의 케미를 한층 살려줬다는 인상이었습니다. 영화진흥위원회(KOBIS) 자료에 따르면 이 작품은 개봉 첫 주말에 전국 스크린을 300개 이상 확보하며 시작했는데(출처: 영화진흥위원회), 두 배우의 이름값이 그 수치를 뒷받침한 셈입니다.
- 라미란: 말을 아끼는 눈빛 연기로 화면 장악, 코미디 이미지를 완전히 벗어낸 신선한 결
- 이레: 능청스럽고 장난기 가득한 면을 새롭게 꺼내, 기존 단단한 이미지와 대비되는 매력 발산
- 박봉섭 감독의 리듬감 있는 연출이 두 배우의 신경전에 팽팽한 긴장감을 더함
옴니버스 구조: 소원의 대가가 쌓이는 방식
이야기는 낯선 동네로 발령받은 신입 교사 고타로의 시선에서 시작됩니다. 학생들 사이에서 은밀하게 퍼지는 소문, 어느 날 갑자기 시험 만점을 받은 아이, 존재감 없던 친구가 용기 내 고백에 성공한 일. 그 공통점이 전천당이라는 가게에서 파는 과자였습니다. 전천당의 상품들은 에피소드마다 하나씩 등장하고, 각 이야기가 독립적으로 완결되면서도 전체 흐름에 이어집니다. 이런 구조를 옴니버스(Omnibus)라고 부릅니다. 쉽게 말해, 짧은 이야기 여러 편이 하나의 큰 틀 안에 묶인 방식입니다.
직접 겪어보니, 이 구조의 장점은 극장 안에서 집중이 흐트러질 틈이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에피소드가 바뀔 때마다 새 인물이 등장하고 새 과자가 나오는데, 그 과자의 효능이 화면 가득 클로즈업될 때마다 손에 든 팝콘보다 화면 속 통조림이며 떡에 더 눈이 갔습니다. 과자를 먹고 기뻐하던 아이들의 표정이 조금씩 굳어가는 장면에서는 팝콘 씹는 속도가 저절로 느려졌고, 그 균열을 카메라가 말없이 붙잡는 방식이 꽤 영리하다고 느꼈습니다.
다만 서브플롯으로 이어지는 고타로와 요코의 이야기는 두 마녀의 신경전에 비해 힘이 다소 약합니다. 요코가 변하고 싶었던 마음의 뿌리를 들여다보는 장면들이 이어지긴 하지만, 감정의 진폭이 크지 않아 클라이맥스에서의 울림이 기대만큼 크지 않았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두 주연의 존재감이 너무 강해 생긴 상대적 약점에 가깝습니다. 원작 소설이 국내에서 누적 판매 100만 부를 넘어선 시리즈임을 감안하면(출처: YES24 베스트셀러), 원작의 방대한 에피소드를 단편 영화 한 편으로 압축하는 과정에서 생긴 한계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라미란의 표정 연기: 후반부에 비로소 완성되는 얼굴
후반부로 갈수록 라미란의 표정 연기가 유독 인상 깊게 남습니다. 요미가 화앙당의 과자를 슬쩍 흘리며 전천당 손님들을 하나둘 빼앗아가는 국면에서, 홍자는 흔들리기는커녕 오히려 여유롭게 다음 수를 준비하는 얼굴을 보여줍니다. 이 장면을 두고 페이셜 액팅(Facial Acting)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여기서 페이셜 액팅이란 대사나 몸짓 없이 얼굴의 미세한 변화만으로 인물의 내면 상태를 전달하는 연기 기술을 가리킵니다. 제 경험상 이 기술이 가장 빛나는 순간은, 배우가 말을 완전히 멈출 때입니다.
아내와 함께 앉아서 그 장면을 보던 순간, 옆에서 킥킥대는 웃음소리가 들려오길래 따라 웃다가, 바로 다음 컷에서 라미란의 눈빛이 달라지는 걸 느끼고 둘 다 동시에 입을 다물었습니다. 그 웃음에서 무게로 넘어가는 전환이 너무 자연스러웠습니다. 이 작품은 내러티브(Narrative), 즉 이야기를 이끄는 중심 서사가 과자 자체가 아니라 그 과자를 둘러싼 인물들의 욕망과 결핍이라는 점에서, 전천당이라는 공간이 단순한 마법 가게가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을 비추는 거울 같은 존재라는 인상을 남겼습니다.
원작이 가진 옴니버스 에피소드들을 좀 더 과감하게 쳐내고, 홍자와 요미 두 사람의 과거나 두 가게가 얽힌 내력을 한 겹 더 파고들었다면 서사의 밀도가 훨씬 단단해졌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반기에 12부작 시리즈로 이어진다는 소식이 반가웠습니다. 이번 편에서 못다 채운 여백을 다음 시즌이 얼마나 정성스럽게 메워줄지, 그 대답이 기다려집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이상한 과자가게 전천당, 원작 소설을 안 읽어도 이해되나요?
A. 제가 원작을 읽지 않은 상태로 들어갔는데, 이해하는 데 전혀 무리가 없었습니다. 옴니버스 구조라 각 에피소드가 독립적으로 완결되고, 전천당이라는 공간의 설정도 극 초반에 자연스럽게 설명됩니다. 오히려 원작을 먼저 읽은 분들은 생략된 에피소드가 아쉬울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Q. 아이랑 같이 보기 괜찮은 영화인가요?
A. 초등학생 아이들이 주인공으로 많이 등장하고, 무섭거나 폭력적인 장면은 없습니다. 다만 소원의 대가를 치르는 장면에서 인물들이 심리적으로 무너지는 묘사가 은근히 있어서, 너무 어린 아이와 함께라면 중간중간 대화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제 경우엔 어른 둘이서 봤는데, 아이와 함께 봐도 이야기 나눌 거리가 많을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Q. 라미란이랑 이레가 같이 나오는 장면이 많은가요?
A. 두 사람이 직접 마주치는 장면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게 오히려 효과적이었습니다. 접점이 적을수록 등장할 때마다 긴장감이 배로 올라갔고, 짧은 신경전 하나에도 무게가 실렸습니다. 두 사람의 케미가 궁금하신 분들에게는 그 기다림 자체가 하나의 재미가 됩니다.
Q. 12부작 시리즈는 언제부터 볼 수 있나요?
A. 하반기에 시리즈로 이어진다는 공식 발표가 있었습니다. 구체적인 편성 일정이나 플랫폼은 아직 확인되지 않은 상태라 단정하기 어렵지만, 이번 극장판이 시리즈 전체의 도입부 역할을 한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이번 편에서 열어둔 여백들이 시리즈에서 어떻게 채워질지가 기대됩니다.
결론
극장을 나서면서 아내와 "나라면 무슨 과자를 골랐을까" 이야기하다 웃음이 터졌습니다. 주차장까지 걸어가는 내내 그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몰랐고, 그게 이 영화가 남긴 가장 오래가는 여운이었습니다. 무거운 서사 대신 인물들의 선택과 그 결과를 가볍고도 영리하게 버무린 작품이라, 가볍게 웃고 싶은 저녁 파트너와 함께라면 충분히 만족스러운 선택이 될 것 같습니다.
다만 두 주연의 무게감에 비해 서브플롯이 아쉽게 마무리된다는 점은 솔직히 짚어둬야 합니다. 그 아쉬움이 오히려 12부작 시리즈를 향한 기대로 이어진다는 게 이 영화의 영리한 점이기도 합니다. 홍자와 요미의 이야기가 시리즈에서 어떻게 깊어질지, 그 대답을 기다려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