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솔직히 저는 이 영화가 단순한 팬서비스용 작품으로 끝날 거라 생각했습니다. 세 명의 스파이더맨을 한 화면에 모아놓는다는 설정이 기대보다 걱정을 먼저 불러왔거든요. 그런데 개봉일에 와이프 손을 꼭 쥐고 앉아 있던 저는, 그 예상이 완전히 틀렸다는 걸 영화 중반도 되기 전에 이미 알아차렸습니다.
세 피터가 한 화면에 섰을 때
이 영화의 핵심 장치는 멀티버스(Multiverse)입니다. 여기서 멀티버스란 각각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평행 우주들의 집합을 말하는데, 닥터 스트레인지의 주문이 어그러지면서 서로 다른 우주의 문이 동시에 열려버리는 상황이 이야기의 출발점입니다. 쉽게 말해, 각자의 세계에서 스파이더맨을 경험했던 빌런들이 낯선 뉴욕 한복판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것입니다.
제가 직접 극장에서 봤는데, 토비 맥과이어와 앤드루 가필드가 처음 등장하는 순간 주변 공기가 달라지는 게 느껴졌습니다. 단순히 익숙한 얼굴이 반가워서가 아니라, 그 두 사람이 각자의 시절에 쌓아온 시간의 무게가 화면 위에 그대로 겹쳐 보였기 때문입니다. 스크린 앞에서 저도 모르게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있었고, 팔걸이 위에 얹어뒀던 손이 어느새 옆으로 옮겨가 와이프 손가락을 붙잡고 있었습니다.
세 명의 피터 파커가 나란히 서는 장면은 캐릭터 연구(Character Study) 측면에서도 주목할 지점이 있습니다. 캐릭터 연구란 동일한 인물이 서로 다른 환경과 서사 속에서 어떻게 변주되는지를 살피는 방식인데, 나이도 상처도 각기 다른 세 피터가 서로를 알아보는 장면들은 히어로 블록버스터가 좀처럼 허락하지 않는 결의 감정을 건드렸습니다. 토비 맥과이어의 피터가 젊은 피터를 조용히 다독이는 대사는, 스파이더맨 시리즈 전체에 보내는 위로의 편지처럼 읽혔습니다.
- 톰 홀랜드 —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가장 소년다운 피터 파커
- 앤드루 가필드 — 오래된 상실을 품고도 뒤늦게 누군가를 구해내는 피터
- 토비 맥과이어 — 경험의 무게로 말하는, 세 피터 중 가장 고요한 피터
멀티버스가 열어놓은 것과 닫아버린 것
이야기의 발단은 정체 노출(Identity Exposure)에서 시작합니다. 정체 노출이란 비밀 정체성을 유지해 오던 히어로가 대중에게 신원이 알려지는 사건을 가리키는데, 미스테리오의 폭로 이후 피터의 일상은 학교도, 대학 입시도, 가족의 안전도 모두 한꺼번에 흔들립니다. 그 답답함을 해소하려고 찾아간 닥터 스트레인지에게 조건을 하나씩 덧붙이다가 주문이 어그러지는 장면은, 사실 웃음보다 안쓰러움이 먼저였습니다.
제 경험상 이 부분이 영화에서 가장 인간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세상 모두의 기억을 지우자면서도 MJ는 기억해 줬으면, 네드도 기억해줬으면 하는 마음에 계속 말을 보태는 피터의 모습은, 합리적인 선택보다 감정이 앞서는 지극히 평범한 소년의 논리였으니까요.
빌런들의 서사를 놓고 보면 평가가 조금 다릅니다. 그린 고블린과 닥터 옥토퍼스는 각자의 우주에서 이미 충분히 쌓아온 서사가 있어 이번 등장에도 무게가 실렸지만, 일렉트로·리저드·샌드맨은 치료되어 돌아가는 과정이 지나치게 간략하게 처리된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악당 재활(Villain Rehabilitation) 개념, 즉 빌런을 처치하는 대신 치료해 원래 세계로 돌려보내자는 피터의 시도는 신선했지만, 그린 고블린을 제외한 나머지에게는 그 과정이 충분히 숨 쉬지 못했습니다. 윌럼 대포가 표정 하나로 광기와 부성애를 동시에 오가는 장면에서 새삼 이 배우의 내공을 다시 확인한 것과 대비되어 더 아쉽게 느껴졌습니다.
큰엄마 메이가 눈을 감는 장면은 화려한 액션 사이에서도 유독 조용하게 가슴을 파고들었습니다. 출처: Marvel Entertainment 공식 프로필에서도 메이 파커를 피터의 도덕적 나침반으로 설명하는데, 그 말이 이 장면 하나로 전부 증명되었습니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말이 유언처럼 남는 그 장면 이후, 피터가 골목에 홀로 주저앉아 오열하는 모습은 슈퍼히어로 영화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날것의 감정을 담고 있었습니다.
가족 관람, 두 번째 극장이 남긴 것
브랜드 뉴 데이 개봉을 앞두고 이번엔 아들 둘을 데리고 다시 극장을 찾았습니다. 거실 불을 꺼두고 블라인드 틈으로 가로등 불빛만 희미하게 새어드는 집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극장에서 아이들을 옆에 앉혀두고 보는 재관람은 전혀 다른 경험이었습니다.
메이가 눈을 감는 장면에서 계속 들썩이던 첫째의 다리가 처음으로 멈췄습니다. 무릎 위에 덮어둔 담요를 붙잡은 작은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게 그대로 전해졌고, 저는 그 순간 아이가 이 영화에서 뭔가를 느끼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자유의 여신상 전투가 화면을 가득 채울 때는 둘째가 소파 끝에 걸터앉았다가 다시 등받이로 물러나기를 반복했는데, 그 작은 몸짓 하나하나가 제가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의 기억과 겹쳐 보였습니다.
흥미로운 건 아이를 키우고 나서 다시 보니 메이의 마지막 말이 예전보다 훨씬 다르게 들렸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내러티브 리셉션(Narrative Reception), 즉 동일한 서사를 수용자의 삶의 맥락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이는 현상인데, 쉽게 말해 같은 이야기도 어떤 자리에서 어떤 나이로 만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직접 경험해 보니 이 말이 틀리지 않았습니다.
엔딩 크레디트가 다 오르고 나서야 극장이 그토록 오래 조용했다는 걸 새삼 깨달았습니다. 출처: Box Office Mojo에 따르면 이 영화는 전 세계 누적 18억 달러 이상의 흥행을 기록했는데, 그 숫자가 단순한 마블 브랜드의 힘만은 아니라는 걸 극장을 나서며 비로소 실감했습니다. 첫째는 어느 우주의 스파이더맨이 제일 멋있는지를 두고 동생과 진지하게 토론을 벌였고, 저는 그 성화에 못 이겨 다음 편도 개봉일에 함께 보러 가기로 약속하고 말았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에서 세 명의 스파이더맨이 다 나오나요?
A. 네, 맞습니다. 톰 홀랜드, 앤드루 가필드, 토비 맥과이어 세 명이 모두 등장합니다. 처음엔 소문처럼 떠돌다가 개봉 후 사실로 확인됐는데, 저도 극장에서 처음 마주쳤을 때 그 등장 자체만으로 꽤 긴 시간 멍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Q. 아이들과 함께 봐도 괜찮은 영화인가요?
A. 초등학생 이상이라면 충분히 함께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직접 아들 둘을 데리고 재관람했는데, 액션 장면의 규모보다 감정선이 더 오래 남더라고요. 다만 메이의 죽음 장면은 아이에 따라 꽤 무겁게 받아들일 수 있으니 미리 살짝 준비시켜 주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Q. 멀티버스 개념을 모르면 이해하기 어렵나요?
A. 크게 어렵지는 않습니다. 영화 안에서 멀티버스가 무엇인지 닥터 스트레인지가 어느 정도 설명해주기 때문에, 마블 세계관을 깊이 알지 못해도 따라가는 데 무리가 없습니다. 다만 이전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한 편이라도 봐뒀다면 세 피터의 감정선이 훨씬 선명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Q. 엔딩이 어떻게 끝나는지 간단히 알 수 있나요?
A.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세부 내용은 아끼겠지만, 피터가 자신을 아는 모든 이의 기억에서 스스로를 지우는 선택으로 마무리됩니다. 제가 두 번 봤는데 두 번 다 엔딩 직후에는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 여운이 꽤 길게 갑니다.
결론
이 영화가 제게 남긴 건 세 스파이더맨의 재회 장면이 아니라, 그 장면 앞에서 저와 와이프가 손을 맞잡았던 기억, 그리고 아이들이 담요를 꽉 쥐던 작은 손의 감촉이었습니다. 브랜드 뉴 데이가 기다려지는 건 순전히 그 경험을 또 한 번 가족과 나눌 수 있다는 기대 때문입니다.
멀티버스 설정의 편의적인 부분이나 일부 빌런 서사의 밋밋함은 분명히 아쉽지만, 세대를 가로질러 세 피터가 서로의 상처를 알아보는 장면만큼은 히어로 영화가 닿을 수 있는 꽤 높은 자리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브랜드 뉴 데이를 앞두고 복습이 필요하시다면, 혼자보다는 가장 가까운 사람과 나란히 앉아 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